아찔한 빛에 머리마저 몽롱해지는 나는 순간 비틀했으나 아슬아슬하게 중심을 잡고 그들에게 손을 흔들며 웃어주었다.
하지만 너무 많이 피를 흘렸기 때문인가?
의지와는 달리 무겁게 눈꺼풀이 내리 앉으며 세상은 온통 암흑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털썩...
결국 쓰러져버린 나.
만약 이대로 죽음이 찾아 든다 할지라도 보람된 삶을 살았노라 자신할 수 있다.
때문에 아직도 얼굴에 미소가 걸려있는지도 모르겠다.
----------------------------이 시대의 마지막 영웅
한동안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나의 몸은 뛰어난 회복능력을 보이며 점차 원상태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병원에서 퇴원하는 그날 많은 사람들이 나와 손수 나의 안전을 보호하려 하였고 사진을 찍기 위해 서로서로 몸을 밀치며 난리도 아니었다.
이제는 그 번쩍이는 불 빛들에 익숙해지는 나는 여유로운 미소까지 보이며 그들의 부름에 답해주었다.
내가 손을 흔들면 그들은 너무도 좋아했고 그런 그들의 안전을 수호한 나는 내가 너무도 자랑스럽다.
퇴원 후 나는 끌려 다니듯 인터뷰 장소로 옮겨졌다.
뭐가 그리 궁금한지 그들은 돌아가며 나에게 질문을 던졌는데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침묵이 아름다운 영웅. 그가 그렇게 나에게 조언했기 때문이다.
하긴 ‘이건 이래서 제가 어떻게 그들을 보호했고 저번 일은 정말 죽을뻔했지만 다행히 살 수 있었습니다’ 라는 식으로 떠벌리면 체면이 깎일 뿐더러 우스워 보이지 않겠는가?
때문에 말없이 그들에게 미소지 을뿐...
후후... 아직도 포기하지 않고 나에게 질문공세를 펼치는 기자 이마에 맺힌 땀방울에 조금은 미안한 생각이 든다.
"아~~ 정말 빡 도네. 뭐 이런 미친 새끼가 다 있어?"
"이형사 무슨 소득 있어?"
"몰라. 계속 실실 쪼개. 아주 미치고 팔짝 뛰겠다니까~~"
"그나저나 저 자식 손에 죽어나간 사람이 몇몇이야? 아까 55명에서 두 명 더 늘었어. 아주 저거 대책 안 선다니까~"
"무슨 이유로 자기 가족을 몰살시키고 그 더러운 하수구 안으로 도망갔는지 모르지만 그 하수구에 널려진 쓰레기들 봤어? 오래된 장난감에 피가 진득하게 묻어서 있는 거 말이야."
"말 도마. 증거품 중에 제일 아트였던 게 물총 안에 굳어진 핏물이야. 저 미친 새끼가 사람 피를 물총 안에 넣고 여기저기 쏘면서 다녔나 봐. 또 그 옆에 여러 종류의 장난감 칼 봤지? 내 생각엔 처음엔 저 미친놈이 그런 걸로 사람들을 위협하지 않았나 싶어. 장난감 칼이 구부러진 게 어떤 충격이 가해진 것 같거든… 그 위로 심상치 않은 혈흔도 검출 됐고 말이야. 에휴~"
"참.. 증인 왔어? 그 놈한테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여성 말이야."
"응. 다행히 다친 눈은 실명되지 않았대. 하지만 아직도 정신과 치료중인 가봐. 하긴. 그런 끔찍한 일을 당했는데 제정신으로 있을 수 있겠어?
훗. 그래도 참 대단한 여성이야. 그 여자 아니었으면 이놈 잡는 게 더 오래 걸렸을 테니까 말이야."
"남자친구랑 있는데 갑자기 나타나서 이상한 말을 했다면서? 악의 무리 어쩌고 하면서 말이야. 하도 기가 막힌 남자친구가 답답해서 담배 하나 꺼내 피는 걸 보고 바로 그 섬뜩한 칼로 마구 찌른 후 늘 그랬듯이 목을 잘랐고 더군다나 겁에 질린 여자를 성폭행 했다지?
아주 기도 안 차. 뭐 그런 자식이 다 있어?
아참. 증언 중에 녀석이 갑자기 돌아서서 쓰레기더미 안에서 칼을 마귀 휘두르며 지랄 발광을 했다는데 도대체 무슨 말이야?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게 한 둘이 아니라니까~~ 진짜 대단한 자식이야~ 행적도 기가 막히고 범행동기며 종잡을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어. 오죽했으면 이 상황이 될 때까지 놈을 계속 놓쳤겠어. 내 형사생활 5년 중에 범인한테 살인충동을 일으킨 건 이번이 처음인 것 같아. 아주 대단해."
"그래도 그런 놈을 역으로 찌른 여자가 더 대단하지않냐? 그 공포의 순간에 어떻게 그 미친놈을 찌를 생각을 했냐고~ 하긴 결혼까지 생각하던 남자를 그렇게 잃었는데 여자도 눈이 뒤집히긴 뒤집혔을 거야~ 아무튼 저 미친놈을 잡을 수 있었던 건 뒤따라가서 놈의 은둔처까지 보아둔 그녀의 제보였어."
"그나저나 저 씨발놈 아직도 실실 쪼개네. 어쭈~ 이젠 노래까지 씨부려? 뭐야 후뢰쉬맨? 아주 미치고 팔짝 뛰겠구만. 저 자식 은둔하던 그 하수구에서도 저 노래가 울려 퍼지더니. 정말 못 들어 주겠군. 짜증나 돌아버리겠다 정말.”
“혹시 살해된 그 꼬마 저 노래 따라 불렀다고 죽인 건 아니겠지? 아주 이제 별 상상이 다 드는구만. 정말 죽어나간 사람만 불쌍하지. 쯧쯧쯧."
"주위사람들 말에 따르면 평소엔 아주 얌전하고 남의 부탁을 거절 못하는 그런 사람이었다는데 술만 먹으면 개가됐다 하더라고. 그것 때문에 마누라랑 매일 저녁 싸워 동네가 시끌시끌 했고.
습관적 음주. 저놈 알콜중독이라면서? 정밀 검사를 해야겠지만 병원관계자가 정신착란이라던 것 같은데...."
"그나저나 반장님 아직도 꼬라지 부려?"
"말 도마 저 자식 검거하기 위해 비밀리에 출동한걸 그 많은 기자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개떼같이 몰려들어 난리도 아니었잖아. "
“어쩐지 아직까지 분위기가 살벌하더라.”
"그나저나 박형사 신문에 났더라~~ 봤냐?"
"응. 나도 봤어. 여기도 있네..."
- 살인귀의 핏빛 미소...
TV속 영웅은 잘생기고 멋진 몸매를 자랑했지만 나는 볼품없는 외모의 영웅이다.
하지만 이런 나의 사진에도 그들은 열광한다.
이시대 마지막 영웅(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