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주위를 잠식한 어둠.
황당함으로 동공이 확대된 내 눈에 아스라이 비춰지는 것은 빽빽이 주위를 에워싼 악의무리들이었다.
썩은 내를 풍기며 나를 조여오기 위해 스물 스물 다가서는 그들은 굶주린 아귀가 먹이를 만났을 때 짓는 만족스런 얼굴이었던 것 같다.
그들은 처음부터 몇몇의 미끼를 풀어 나를 기다렸던 것인가?!!
함정?!!!!!
그렇다. 그들은 보기 좋게 나를 유인하여 함정에 빠뜨린 것이다.
"이럴 수가...."
이 엄청난 상황 앞에 내가 제일 처음에 해야 하는 일은 사리를 분명히 판단하는 것일 테다.
하지만 인간은 나약한 동물이다. 영웅인 나도 인간이다.
영웅이라고 두려운 것이 없겠는가? TV에서처럼 빛과 함께 나타나 고난도 고뇌도 없이 악을 잘라냈을까?
어떻게든 이 상황을 벗어나야 정의를 수호하고 사람들을 보호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지만 의지만 앞서갈 뿐 별다른 해법이 머릿속에서 떠오르지 않는다.
매캐한 냄새를 풍기며 나를 향해 서서히 다가오는 놈들. 그들은 인간의 두려움을 극대화 시키는 법을 알고 있으리라.
어느새 내 가슴속 깊은 곳에 두려움이 찾아왔다.
그 동안 철저히 악을 소멸시킨 내가 그들에게 잡힌다면 과연 어떤 고통을 당할까?
순간 머리를 스쳐 지나간 생각은 어릴 적 인상을 구기며 봤던 영화 마루타. 손목을 영하의 온도에 얼려 잘라내는 장면이 스친 나에게 그 마루타의 얼빠진 모습이 생생히 그려진다.
잠깐, 그건 오히려 다행이지 않는가? 온몸이 군데군데 얼면 절단한다 할지라도 그때 당시는 그 혹독한 냉기에 아픔을 느끼지 못할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 정도로 자비롭지 않을 것이다.
산채로 매달아 내장을 하나 하나 끄집어 낼까? 그럼 나는 그 동안 영화에서만 봤던 인간의 핏물고인 장기를 생생히 보게 되겠지?
아니면 목을 효수한 나의 행동을 비웃으며 한 사람씩 돌아가며 날카로운 메스로 네 목을 그어나갈 수도 있겠다. 예리한 메스가 목의 여린 피부를 훑고 지나갈 때의 그 섬뜩함...
나는 그렇게 생을 마감할 것인가?
이대로 저들에게 잡힐 수 없다.
차라리 내 스스로 목숨을 끊을지언정...
"으헉...."
당황한 사이 여자킬러의 공격은 자행되었다.
틈을 노린 그녀의 공격에 속수무책인 나는 애지중지하던 내 무기를 옆구리에 박히는 것을 방치한 것이다.
이시대 마지막 영웅(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