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산한 밤거리의 화려한 레온싸인.
적막한 어둠이 잠식한 이곳에서 나는 오늘도 쓰레기들의 악행을 저지하기 위해 존재한다.
철저한 아웃사이더. 그건 외로운 영웅의 또 다른 이름이리라.
결코 남 앞에 나가 잘난척하지 않는 숨은 영웅은 늘 그렇듯 선량한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기척을 숨기며 그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다.
하지만 영웅도 사람이다.
그들은 외롭지 않겠는가? 그들은 고뇌가 없겠는가? 그들 역시 사랑에 목마르지 않겠는가?
"아저씨 고맙습니다."
"그래. 꼬마야 조심하거라."
하지만 이 몇 마디 말로 영웅은 만족해야 한다.
해맑은 꼬마의 웃음을 찾아주는 것만으로도 영웅은 살포시 미소 지어야 한다. 이런 미소와 사람들의 감사하는 마음이 영웅의 외로움은 잠시나마 잊을 수 있는 것이다.
"꺄악~ 무슨 짓이야~~~~~"
후미진 골목 앙칼진 여성의 비명이 귓전을 강타한다.
일반인들과 똑같은 나는 이상하게 나를 애타게 찾는 목소리만은 가깝게 들을 수 있었다. 이것이 아마도 그가 말한 숨겨진 능력 중 하나이리라.
"당신 뭐야?"
"여자분께서는 일단 제 뒤로 숨으시지요."
코트 속에 숨겨진 나만의 무기를 꺼내며 나는 친절히 말하였다.
반쯤 벗겨진 옷. 타이트하게 붙은 여성의 위험한 의상에도 문제가 있었겠지만 우악스럽게 그녀의 옷자락을 뜯어버린 녀석은 그 동안 선량한 여성들을 허락 없이 범한 게 분명했다. 이 우범지역을 겁도 없이 돌아다닌 여성도 잘못은 있지만 눈 안에 그렁그렁 맺혀있는 눈물로 미루어보건대 그녀는 다신 그런 용감한 행동을 하지 않으리라.
혐오스러운 색마는 내가 가장 싫어하는 악이다.
다소 잔인한 광경이 되겠지만 위험에서 구원된 여성은 그 잔인함에 더욱 큰 안도를 느끼리라.
"이자식이 미쳤나? 빨리 안 꺼져?"
"용서의 가치가 없다. 다시는 그 더러운 짓을 못하게 해주지.”
"웃기는군. 내가 너 따위에게 당할 것 같나? 후후...... 이 동네에서 나는 최고라고. 알아?"
"훗. 그럼 이 동네도 네가 없어짐으로써 조금은 정화되는 것인가?"
우락부락한 몸매를 자랑하려는 듯 색마는 보란 듯이 웃옷을 벗어 젖혔다. 탄탄한 근육질이 잘 다져진 팔뚝과, 가슴. 분명 놈은 나보다 훨씬 멋진 남성미를 자랑하고 있었다. 그 잘 가꾼 몸으로 그 동안 얼마나 많은 여성이 희생되었을까? 절로 한숨이 나온다.
이 우범지역에선 살인은 밥 먹듯 일어나고 있다.
쓰레기들이 날뛰며 죄 없는 사람들의 돈을 뺏기 위해, 혹은 재미 삼아 생명의 불꽃을 멋대로 꺼뜨리는 것이다.
나의 임무는 그들을 없애는 것. 생태계에서도 천적이 존재하듯 악의 천적인 영웅이 되어 그들을 보호하는 것.
오늘도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나는 힘겨운 싸움을 받아들이고 있다.
-부웅...
녀석은 이곳의 토박이 싸움꾼인 듯 싶다. 언제 끼었는지 날카로운 무기가 밖인 장갑을 끼고 나를 위협하니 말이다. 노련하게 빈 곳을 치고 들어오는 녀석의 장갑에선 피 냄새가 풍긴다.
"어쭈. 제법 피하는군."
제법 센 주먹을 자랑하며 나를 위협하는 놈이지만 몸뚱이만큼 속도는 멋지지 못했다. 아무리 위협적인 주먹이라 할지라도 맞지 않으면 그만인 것이다.
느린 공격이나 한방에 골로 갈 놈의 주먹은 스쳐 지나갈 때마다 나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이대로 가다간 놈에게 당할 것이다.
-부웅..
놈은 이젠 깨끗한 돌려차기를 연발하며 나를 조여오기 시작한다. 멋진 호선을 그리며 달려드는 위협적인 발차기는 놈의 온몸이 무기라는 것을 실감나게 해준다. 피하기는 하겠으나 나에게 공격의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기에 나는 냉정하게 사태를 파악하며 아슬아슬하게 놈이 공격을 피하고 있었다.
"흥. 재미없군. 그냥 보내버려야겠어. 잘 가라고 이 잘란척 또라이야."
놈의 공격이 나에게 위협이 되지 못함을 깨닫자 이젠 다른 방법을 택한 듯 보였다. 어느 정도 거리를 확보한 녀석은 허리춤을 뒤적이기 시작하니 말이다.
번쩍이는 광택이 섬뜩하게 비춰지는 무언가가 시야에 들어왔다.
“광선총?!”
“그렇다. 한줌의 재로 바꿔주지. 흐흐흐. 이건 꽤 비싼거라 구하는데 힘들었다고~~”
자신만만하게 나를 겨냥한 총을 든 녀석의 비릿한 웃음.
순간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놈은 내가 조금 특이한 영웅이라는 것을 모르는 모양이다.
이시대 마지막 영웅(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