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장은 교내 학생들과 손님들로 여전히 시끄럽게 북적거렸고, 나와 민아는 그런 분위기를 어지간히 좋아하는 탓에 이리저리 폴작 거리면서 돌아다녀, 요한이와 유다를 애먹였다.
우리가 어느 한 장소에 도달 했을 때, 나와 민아는 눈을 마주치고는 씨익 웃은 후, 요한이와 유다를 한 번 바라봤다.
우리의 시선을 받은 요한이와 유다는 퍽 불안스러워 보였다.
그도 그럴것이 우리가 멈춘 자리는 물풍선을 터뜨려 맞추는 이벤트가 열리고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설마..누나..
-씨익..^^
-아니지? 나같이 사랑스러운 남편을 설마 이 추위에....
-씨익..^^
:
:
:
:
:
-젠장!누나 집에가서 보자구! 후회할꺼야...
-크억..선생님...
잠시후, 요한이는 쭉쭉빵빵 모양으로 만들어진 얼굴만 뚤린 미녀 모양의 판자에 얼굴을 내밀고 있었고, 유다는 텔레토비 모양의 판자에 얼굴을 내민채, 울부짖고 있었다.
물풍선을 쥐고는 여유로운 모습으로 서 있는 나와 민아와는 달리 주위는 경악과 뜨악으로 어둡지만, 기대감이 가득한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누구도 감히 건드려 보지 못하는 두 남자가 물세레를 받을 준비를 하며, 얼굴을 내밀고 있었으니..
'퍽!' '촥'
하는 소리가 들려왔고, 주위는 쥐죽은듯, 고요해지며 모두 한결같이 물에 흠뻑 젖은 유다의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꺄하하...유다야..너 흠뻑 젖었다.
-으으..선생님...
그러나 그런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민아는 신이나서 유다에게 물풍선을 던져 댔다.
그런 민아를 보며, 나 역시 요한이에게 물풍선을 집어 던졌고, 민아 만큼 백발백중 다 맞추지는 못했지만, 요한이를 적시기에는 충분했다.
-뭐야!!!젖은 사람 처음봐?!! 꺼져!!젠장..이 나무는 언제 부터 여기 있었어? 거슬려! 당장 자르도록 해야지!!
-요한아..^^;;
-'쾅!'뭐야..무슨 벽이 이렇게 약해? 살짝 건드려서 무너지면, 어쩌자는 거야?
-요한아....^^;;;;;;;
-왜?ㅡ_ㅡ++
-화났어?
사실 묻지 않아도 요한이의 행동을 보면, 화났다는건 삼척 동자도 다 알 지경이었다.
거슬린다고 걷어차 부러뜨린 나무가 자그만치 5그루에 내리쳐 구멍낸 담벼락이 세군데 였다.
요한이는 걸어 가면서, 한시도 입을 붙이지 않고, 불평을 늘어 놓으며, 사람들을 공포에 몰아 넣고 있었다.
물론, 나한에 직접 화내는 것은 아니다. 아니, 차라리 나에게 그냥 화내면 속이라도 편하지..싶을 정도로 주위 사람들을 겁먹게 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요한이의 대답은 전혀 신빙성이 없었다.
-내가 왜 누나한테 화내?? 그깟 물세레 좀 먹었다고, 누나한테 화내겠어? 나 절.대.로.화.안.났.어..
-그, 그러냐...^^;;
비꼬면서 조롱하듯 말하는 요한이가 지금은 신경 쓰였지만, 그러다가 금방 풀릴 것 이라는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난 요한이를 달래는걸 단념하고 다시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요한이에게 살짝 미소 지어 보인후,고개를 돌린 뒤에는 민아와 유다가 따라오고 있었다.
주위가 워낙에 시끄러워서 둘의 대화가 들리지는 않았지만, 민아가 유다를 달래느라고 진땀 빼고 있다는걸 알 수 있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보이는 민아의 약한 모습을 바라보느라 요한이에게서 약간 뒤쳐지고 말았다.
옆에서 계속 꽁시랑 거리던 요한이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자, 난 주위를 두리번 거리면서 요한이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요한이로 보이는 남자의 뒤를 쫓아가려고 할때,내 아프지 않은 팔을 조심스럽게 움켜쥐고 당기는 느낌이 들었고, 난 내 팔을 잡은 사람을 바라보았다.
-요한아...
-바보!!!지금 정신을 어디다가 놓고 다녀?!!절대 나한테서 떨어지지 말라고 했잖아.설마 저 자식이 난줄 알고 따라 가려던건 아니겠지? 자꾸 이러면, 그냥 들어간다.
-설마...하하하..^^;;
요한이는 내 팔을 잡아 당겨 복잡한 운동장을 누비고 다니면서도 끈임없이 잔소리를 내 뱉었다.
가만..그런데 아프지 않은 팔이라...나 팔 다쳤었지? 순간 난 지금까지 아픈 팔을 한채, 이 혼잡하고 복잡한 운동장을 누비고 다니면서도 조금도 혼잡하거나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는걸 깨달았다.
그런 생각이 스치자 요한이를 가만히 바라봤고, 그 원인을 알 수 있었다.
요한이는 온통 땀으로 젖어 있었다. 물 풍선이 터지면서 옷이 젖었나..라고 막연히 생각했던 옷의 얼룩이 사실은 땀이었던 것이다.
혼자 다니는건 전혀 힘들지 않았을 테지만, 날 감싸면서 내가 불편하거나 혼잡함을 느끼지 않게 하려고 꽤 애쓰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난 그런 요한이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여전히 투덜거리며, 내 손을 잡아 이끄는 요한이의 손바닥에 몇글자 적어 내렸다.
내가 요한이의 손바닥에 글을 쓰는걸 마쳤을때, 요한이가 그 자리에 딱 멈춰 선채, 날 기쁜 눈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진짜야? 그래두돼?
-그럼...^////^
요한이가 이렇게 묻는 것에서도 난 요한이의 사랑을 잔뜩 느낄 수 있었다.
내가 꼼지락 거리면서 조그만하게 적어내린 글자에 반응한다는건,이 복잡한 곳을 뚫고 지나 가면서도 몸의 모든 신경을 나한테 쏟아 붓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즐거운 마음으로 요한이의 질문에 대답한 나는 요한이가 다음에 할 행동을 기다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요한이의 고개가 서서히 숙여졌다.
'키스해줘....'
내가 요한이의 손바닥에 적어 내린 글자였다. 그리고 요한이는 어김없이 내가 원하는걸 해준다...
요한이의 입술이 막 내 입술에 닿으려는 찰라에 난 누군가와 부딪치는걸 느꼈고, 그와 동시에 학교안에 켜져있던 불은 물론이고,학교 밖.적어도 사방 500m 내외의 불이 모두 꺼지는게 보였다.
무슨일인지 모르는 내가 어리둥절 해 있을때, 약간 흥분된, 그리고 장난끼 다분한 목소리가 운동장에 메아리 쳤다.
-여러분!!!기다리시고 기다리시던 키스타임 입니다..인연을 믿으시고, 기적을 믿으시면서, 사랑하는 내 연인, 나의 운명을 찾아 보세요..기회는 단 5분동안 주어집니다.
유다가 옥상에서 잠깐 설명했던, 키스타임인 모양이었다.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다가 어둠에 조금 익숙해지자, 주위에서 키스하는 연인들의 실루엣이 하나둘 보였다.
키스를 하고 보니, 연인이 아니었는지 당황스런 웅성거림과, 뜻하지 않은 도둑 키스를 당했는지, '꺄악' 하는 비명소리도 간간히 들려왔다.
나 역시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 손으로 입술을 가린채, 아까 부딪치는 바람에 떨어진 요한이를 찾으려고 두리번 거렸다.
그때, 누군가의 손이 내 팔목에 닿았고, 익숙한 체취와 함께 그 사람의 입술이 내 입술에 부딪쳤다.
그리고 입술이 닿았을 때까지 난 그게 요한이라는걸 믿어 의심치 않았다. 적어도 그 사람의 혀가 내 입술을 쓰다듬을 때까지는..
요한이가 아니었다. 날 소중하게 대하는것은 분명하지만, 절대 요한이가 아니라는걸 알 수 있었다.
난 재빠르게 그 사람을 밀쳐 냈고, 그 사람 역시 무척 놀랐는지, 나에게서 서둘러 떨어져 나갔다.
난 팔을 들어 그 사람이 키스해 왔던 입술을 거칠게 닦아냈다.
당황한 내가 여전히 입술을 닦아내고 있을때, '펑!'하는 소리와 함께 까만 하늘에 불꽃들이 색색깔 수를 놓았고, 꺼져있던 불들이 하나 둘씩 켜지기 시작했다.
드디어 모든 불이 켜지고 내 시야가 명확해 졌을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장면은 당황한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유다였다.
그리고 그 옆으로 요한이가 보였고, 반대쪽 옆에는 민아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설마..신유다..너..
난 눈을 가늘게 뜨고는 벙쪄 있는 유다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나 대답은 유다가 아닌, 요한이에게 흘러 나왔다.
-누나...설마 키스했어? 유다랑??
-아..저기 그러니깐..요한아.
-했냐구!!!!!!!!!!!!!!!!
-미안.....넌 줄 알았어..ㅠ.ㅠ
요한이는 무척 화가난듯 해 보였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유다를 집어 던지거나 주먹을 날리는 일은 다행히 하지 안았다.
대신에 험상궂은 얼굴을 하고는 사람들의 시선에 모두 쏠려 있는 가운데서 당당히..빌어먹게도 지극히 뻔뻔스럽게 내 입술을 덮쳐 왔다.
난 요한이에게서 벗어나려고 바둥거렸다. 그러나 요한이는 그런 나를 너무나 쉽게 제압하고는 하던일을 계속해 내려갔다.
지금까지의 어떤 키스보다 길고 진했다. 벌주려는 키스...
무척 화가 났을 것이다. 자신이 보는 앞에서 외간 남자와 버젓이 키스를 하는 와이프를 봤으니..더군다나 2년간이나 함께 살아 온 남편도 구분을 못하다니...ㅠ.ㅠ
난 요한이의 키스를 체념한채, 받아들였고, 그럴수록 요한이의 키스는 더욱 깊어졌다.
옆에서 민아는 휘파람을 불며 야유를 날렸고, 유다는 지은 죄가 있어 요한이를 돕기로 작정을 했는지, 주위의 시선을 우리에게서 떨칠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장작 10분간의 키스가 끝났을때, 난 숨이 차서 헐떡 거리고 있었지만, 요한이는 아무런 불편함도 없는지 무표정한 얼굴로 멀뚱히 날 노려 보았다.
-요..요한아...헤헤...^^;;
실수이긴 했지만, 일단 잘못을 저지른 내가 먼저 요한이에게 말을 붙였다.
그러나, 요한이는 내 말에는 신경도 쓰지 않은채, 민아에게 고개를 돌려 말을 했다.
-민아누나...유다는 누나가 알아서해. 내가 섭섭하지 않을 정도로 하지 않으면, 정말 내가 나설꺼야.
-걱정마라..나도 이녀석과 조.용.히.이.야.길.나.누.려.고.했.거.든.
난 하얗게 질린 유다의 얼굴을 보며, 내 처지가 저런것 같아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지만, 동병상련의 아픔을 나눌 틈도 없이 난 요한이의 손에 이끌려 교문을 벗어나고 있었다.
한참을 걸어 집 앞까지 왔지만, 요한이는 그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요한이에게서 어떤 말이든지 이끌어 내려고 온갖 노력을 마다하지 않았지만, 모두 헛 수고였다.
그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 끝에 집안에 발을 들여놓자 그제서야 요한이가 나를 바라봤고, 긴장하고 있는 나에게 말을건냈다.
-누나..용서 못한다는거, 알고 있지? 두고봐..오늘 밤 이후로 절대 나랑 다른 남자 헷갈리지 못하게 만들테니까.
.. -그..그게 무슨 말이야? 유다랑은..정말로 실수 였다고..어쨌든 금방 알아차리긴 했잖아!!
-그러니까!!앞으로는 절대로 그런일 없도록 각인 시켜 준다고 했잖아!! 누나가 잠시라도 나와 유다를 구분하지 못했다는 것 자체가 난 용납이 안돼! 알아??!
-그래서 뭘 대체 어떻게 각인 시켜 준다는 거야? 내가 잘못했어..그러니깐, 제발 그만하자...
난 정말로 겁 먹은채, 요한이에게서 슬금슬금 물러서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요한이는 이미 결심을 굳혔는지, 전혀 물러 설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요한이의 어두워진 눈동자가 정말로 화가 잔뜩 나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었고, 그런 눈동자를 하고 있는 요한이는.....................대책이 없다.ㅠ.ㅠ
이대로 두면, 요한이가 분명히 무슨 일을 저질러도 저지른다는 생각에 난 최대한 멀리 요한이에게 벗어나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현관으로 달아날 준비를 했다.
그러나 생각만 간절했을뿐, 실제로는 요한이에게서 한 발자국도 멀어지지 못했다.
이미 내 마음을 알아챈,(이넘..관심법을 쓴다..ㅡ_ㅡ;;)요한이는 내가 움직이기도 이전에 내 팔을 움켜 쥐고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난 크게 당황한 표정으로 요한이를 바라봤고, 요한이는 약간 더 굳은 얼굴로 날 노려 보고만 있었다.
-하하..^^;;문이 잘 잠겼는지 확인하려..으악!!!0_0
그리고, 굳은 얼굴의 요한이에게 궁색하게나마 변명을 하던 나는 말을 마치지 못한채, 비명을 내질러야 했다.
요한이가 날 들쳐 업었고, 난 요한이의 어깨에 짐짝 처럼 걸친 꼴이 되었기 때문이다.
-악!악! 놔 이놈아!! 날 어떻게 할 셈이야? 당장 내려 놓으란 말야..
-시끄러!! 잘못을 했으면, 벌을 받는거야. 자꾸 그렇게 난리치면, 엉덩이라도 내려 칠꺼야.
요한이에게 반항아닌 반항을 하던 나는 요한이의 말에 금방 수그러드는 약한 모습을 보였다.
나도 이러긴 싫지만, 요한이가 하는 말은 모두 실현 가능한 말이기 때문에 알아서 몸을 사리는 것이다.
요한이가 날 들어서 내려 놓은 곳은 욕실이었다.
내가 무슨 영문인지 몰라 멀뚱히 서 있자, 요한이가 말했다.
-씻어. 난 상관 없지만, 누나가 불편해 할까봐 시간 주는거야. 빨리 씻어...
-시..시러! 별루 씻고 싶지 않아.
-흐음..그래? 누나가 그렇다면야..난 상관 없다니까..그렇게 빨리 나하고 둘이 있고 싶어?
-무,무슨 말이야?
-이야기 했잖아..날 각인시키겠다고. 누나의 신경 하나하나가 날 기억하게 만들꺼야...
요한이의 말에 난 잠깐 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제서야 요한이가 나에게 하려는 일을 눈치챘기 때문이다.
요한이는 나에게 아내의 의무를 실행하게 하려는 것이다.
아무말 없이 동그랗게 뜬 눈으로 입만 벙긋 거리고 있는 나에게 요한이는 아무런 표정이 없는듯 했지만, 실은 웃고 있는 눈으로 다가왔다.
요한이의 고개가 숙여지고, 내 입술과 요한이의 입술 간격이 종이 한장 차이쯤 되었을때, 요한이가 조그맣게 속삭이는걸 간신히 들을 수 있었다.
-(또 안된다고 하지마..난 이미 참을 만큼 참았으니까...남편이 아내를 안는건 당연한거야....)
-하..하지만, 요한아!! 기다려봐.
-싫어. 이제 더이상 누나 사정 봐주지 안을래. 더 기다리다간 내가 먼저 죽을것 같아.
요한이의 말에는 전혀 양보의 기색이 없었다.
사실 두려웠다. 난 지금껏 요한이뿐만 아니라 어떤 남자와도 관계를 가진적이 없었다.
손 빠른 요한이가 그럴리 없다고, 민아마저 믿지 않았지만, 그건 사실이었다.
요한이가 날 덮친건 지금까지 딱 한번 이었고, 우리가 신혼여행에 간 첫날밤 이었다.
그때도 두려움에 난 필사적으로 그만두라며 매달렸고, 내가 울음까지 터뜨리자 요한이는 내 어깨와 머리를 쓰다듬고 안아주는 행동으로 날 안심시키면서 포기했던 것이다.
그리고, 내가 원할때까지 기다리겠다고 약속한 이후, 농도 짙은 스킨쉽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한번도 날 강제로 안으려고 억지를 부린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 요한이는 그 약속을 깨려고 한다.
지금 요한이는 겉으로 표현하는것 보다도 나에게 더 많이 실망하고, 화가 나 있는것이다.
경황이야 어떻든, 무조건 요한이에게 벗어 나야겠다고 생각한 나는 바로 앞에 닿을락 말락 다가와 있는 요한이의 입술을 손바닥으로 밀어내면서 서둘러 말했다.
-생각이 변했어. 씻고 싶어서 미칠 지경이야.
그리고 말을 마친 나는 샤워실로 들어가 재빨리 문을 잠궈 버렸다.
밖에서 요한이의 웃음 소리가 들렸지만, 난 그런 요한이의 웃음 소리에 비례해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문 앞에 주저 앉은 나는 내일 아침까지 욕실에 숨어 있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런 내 결심이 무색해 지는건 순간이었다.
욕실 문 밖에서 요한이의 목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누나..설마 거기서 밤 셀 생각이라면, 관두는게 좋아. 그곳 열쇠는 내 손에 있고, 필요하면 문까지 부술 생각이니까.
-나쁜넘..ㅠ.ㅠ
거의 울며 겨자 먹기로 이렇게 된 바에야 씻고나 보자는 생각에 난 옷을 벗어 던지고, 샤워기를 틀어 샤워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최대한 천천히 최대한 오래오래 샤워를 했지만, 역시 샤워 하는 것으로 하루를 보내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당연하지..ㅡ_ㅡ)
샤워를 마친 나는 욕실에 걸려 있는 가운을 걸치고, 그게 생명줄이라도 되는냥 꽉 움켜뉜채, 욕조 옆에 놓인 작은 의자에 앉았다.
밖에서 요한이가 움직일때 마다 들리는 미세한 소리에도 내 신경은 곤두서 버렸다.
한숨을 내쉬면서 긴장으로 당겨오는 목을 주무르던 내 눈에 순간, 커다란 창문이 보였다.
그 창문을 이용하면, 충분히 빠져 나가는게 가능하리라는 생각이 들자 난 다시 희망에 차올라, 작은 의자를 디딤돌로 삼은채, 창문 밖으로 몸을 내밀었다.
하지만 실망스럽게도 내 몸은 빠져 나갈듯 하면서 쉽게 빠져 나가지가 않았다.
내가 혼신의 힘을 다해 노력하고 있을 때, 말소리가 들여왔다.
-바깥은 시원해?
-힘들어서 시원한지 모르겠어.
-흐음..많이 힘든가봐?
-알면 말시키지마.
-도와줄까?
-그럴래?
계속해서 들려오는 질문에 난 무의식적으로 대답했고, 마지막의 질문을 들은 나는 반가운 마음에 머리를 다시 집어 넣은채, 활짝 웃으며 뒤를 돌아 봤다.
그곳에는 요한이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팔장을 낀채, 날 노려 보고 있었다.
-요한아..하하..더워서..^^;;;
-누나...내가..싫어?
-아~~니!!니가 싫을리가 없잖아.
-그럼 됐어.
날 여전히 노려보며, 말을 하던 요한이는 마지막 말을 마치고는 날 번쩍 안아들었다.
-요한아...제발 다시 생각해봐..
난 최대한 요한이의 마음을 돌려보려고 노력했지만, 요한이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어느새 침실에 도착해 있었고, 난 더욱더 긴장하기 시작했다.
푹신한 침대가 등에 닿자, 난 두눈을 꼭 감고 말았다.
그리고 내가 눈을 감자마자 요한이의 목소리가 조용히 들러왔고, 난 그 목소리가 품고 있는 의미에 나도 모르게 눈을 번쩍 뜨고 말았다.
-누나...버진..이야?
눈을 뜨기 전의 나는 요한이의 뺨이라도 때려 주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러나 눈을 뜨고 본 요한이의 굳은 얼굴과, 긴장으로 딱딱하게 뭉친 근육이 만져지자, 뺨을 때리기는 커녕 얼굴을 쓰다듬어 주고 싶은 충동에 힙쓸렸다.
계속해서 긴장된 표정으로 대답을 기다리는 요한이가 보이자 난 살며시 고개만 끄덕여 보였다.
그런 내 작은 행동을 본 요한이의 표정은 다시 활짝 펴졌고,내용이야 어떻든 들려오는 목소리 역시 훨씬 밝아졌다.
-다행이야...만약에 누나가 버진이 아니었다면, 누나 첫 남자를 찾아 죽여 버렸을지도 몰라..그전에 내가 질투로 미쳐버리지 않는다면..
-요한아..부탁이야..지금은...
-누나. 미안,,,그런데 나, 더이상 못 기다리겠어..
-요한아...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누가가 언젠가 나한테 떨어질것 같은 기분이 들어. 불안해, 불안해서 미치겠단 말이야..2년동안이나 부대끼면서 살아온 남편도 금방 알아차리지 못하잖아..만약에 그런일이 또 생기면, 나 그땐....정말 누나..용서할 수 없을지 몰라..
난 다시한번 요한이의 마음을 바꾸려는 노력을 시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한이의 맘은 변할 줄 몰랐고, 마지막 말을 마친 요한이는 더이상 내 말을 듣지 않겠다는 듯이 거칠게 키스해버리는 것으로 내 입을 막았다.
요한이의 혀가 날 어르듯 내 입술에 스쳤고, 내 입술이 그 유혹에 못이겨 벌어짐과 동시에 내 입안으로 요한이의 혀가 밀려 들어와 입안 구석구석을 쓰다듬었다.
기분 좋은 키스에 열중하던 난 미쳐 내 가운 사이로 들어오는 요한이의 손을 느끼지 못했고, 그 느낌이 전해 지자 다시 밀려오는 두려움에 몸부림을 쳤다.
요한이는 나를 달래려고 무던히 노력했지만, 내 두려움을 없애주지는 못했다.
극도로 심해진 두려움과 긴장에 난 결국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인채로 본 요한이의 얼굴은 나만큼이나 굳어 있었다.
요한이는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미안해 죽겠다는 듯이, 안타깝다는 듯이 말했다.
-누나..제발 울지마..나 누나가 울어도, 누나가 싫어해도 멈출 수 없을것 같아..제발 울지마. 누나가 울면, 나 어떻게 되는지 알잖아..부탁이야..나 마음 아프지 않게 울지마..처음으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누나 아프게 할꺼야..그래도 용서 해줘..제발 울지 말구..응? 누나..
요한이의 목소리는 간절하고 애절해서 듣고만 있는 나조차도 가슴 아플 지경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쉽게 요한이를 허락할 수 없었고, 요한이는 울고 있는 나를 보며 마음 아파 하면서도 멈추지 않았다.
요한이의 입술이 내 귓볼을 핥았고, 목으로 내려와 쇄골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더 아래로 내려와 가슴에 이르자 난 몸의 힘을 다 동원해 요한이를 밀치면서 거의 흐느끼는 소리로 거부했지만, 요한이는 여전히 멈추지 않았다.
몸에 힘이 다 빠진 나는 결국 포기한채, 더이상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고, 그 순간 밀려온 엄청나게 강한 통증에 비명을 지르고는, 정신을 놓고 말았다.
'차가워....'
볼에 닿는 차가운 느낌에 난 살며시 눈을 떴다.
눈을 뜨자 마자 쏟아져 들어오는 강한 빛 때문에 다시 눈을 감아야 했지만, 잠시 후에 빛에 익숙해지자 또 한번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눈을 뜨고 뭔가를 바라 볼 여유도 없이 난 볼에 닿는 차가운 느낌을 다시 받아야 했고, 그 즉시 그게 무엇인지 확인 작업에 들어갔다.
그 차가운 물체의 정체는 역시나 요한이었다.
그러고 보니, 결혼한 이후, 잠에서 깬 내가 가장 먼저 보게 되는건 언제나 요한이였다.
잠에서 깨어난 요한이의 하루 일과의 시작은 내가 일어날때까지 지켜보는 것이다.
언젠가 내가 왜 그렇게 날 바라보냐고 물었더니, 요한이는 확인하는 것 이라고 말했다.
꼭 껴안고 자면서도 일어나면, 내가 어디론가 사라지거나 모든게 자신의 꿈이었을까봐 내가 눈을 뜨고 활짝 웃어줘야 안심이 된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들었을 때의 기분이 떠오르자, 난 어제의 일을 모두 잊을 정도로 기분이 좋아졌다.
내가 눈을 뜨고도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자 걱정이 되었는지 요한이가 조심스럽게 물어왔고, 난 일부러 차갑게 대답했다.
-누나..괜찮아?
-안 괜찮아...
-미안...
-많이 아파.
-잘못했어.
-너..나쁜놈이야..
-알아...
-거짓말쟁이.
-응..
-변태.
-할말없어..
-너 싫어.
-누나..나 미워하지마...
-싫어.
-제발...
-절.대.싫.어.
-나 누나한테 미움 받으면 못살아...
-또 그럴꺼야?
-...............미안...
-또 아프면, 너 죽여 버릴꺼야.
계속해서 의기소침 하게 대답하는 요한이가 안스럽자 난 그만 용서해야 겠다는 생각에 마지막 말을 덧붙였고, 역시나 요한이의 표정은 여느때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밝아졌다.
그런 요한이를 흐뭇한 마음으로 바라보다가 문득, 시간이 궁금해지자 시계를 쳐다봤다.
'12시50분...'
-앗!!요한아.
시간을 보고 놀란 내가 다급하게 요한이를 부르자 요한이도 덩달아 놀라며 나를 살폈다.
-왜그래, 누나? 어디가 또 안 좋아? 아파?
요한이의 걱정이 가득한 목소리에 미안해진 나는 머쓱하게 웃고는 천천히 대답했고, 내 대답에 요한이는 안심한 표정으로 살짝 미소지으며, 말해 주었다.
그러다가 순간 내가 옷을 입었나 하는 생각에 순식간에 고갤 숙였고, 다행히도 내 몸에는 헐거운 요한이의 티셧츠가 걸쳐져 있었다.
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양팔을 내밀었고, 그런 내 행도에 쿡쿡 웃던 요한이는 날 껴안아 거실로 향했다.
주방과 이어진 거실엔 향긋한 음식 냄새가 풍기고 있었다.
내가 자는 동안 요한이가 정성스럽데 마련한 모양이었다.
요한이의 품에서 내려와 식탁으로 뽀르르 달려간 나는 예쁘게 차려진 식탁을 감상할 겨를도 없이 주린 배를 채웠다.
어느정도 배가 차고 내가 만족한 표정을 짓자 요한이가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배불러?
-응..^^
-쥬스 만들어 줄까?
-키위..
-알았어...
내 대답을 들은 요한이는 재빨리 냉장고에서 키위를 꺼내 깨끗이 다듬은 다음 키위 쥬스를 만들기 시작했다.
내가 시탁에 엎드린채, 그런 요한이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을때, 다시 요한이가 말했다.
-누나..
-응?
-우리 오늘 뭐할까? 오랜만에 쉬는거잖아.
-글쎄...먼저, 오락하자.
솔직히 난 오락을 지독히도 못한다.
반면에 요한이는 모든 종류의 오락을 섭권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한이는 10에 9는 나에게 진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내가 이기게 게임을 하는것이다.
지기 싫어하는 내 성격상 요한이에게 지거나 하면, 그날 하루종일 난 우울한 기분으로 지내기 때문이다.
오락을 하자는 내 말에 요한이는 얼굴을 잠시 찌푸렸지만, 곧 웃음을 되찾고 다시 말했다.
-그 다음에는?
-그땐...그때 다시 생각하고...
-킥..그래.
'데굴..데굴...데구르르...'
-악!!!!!지겨지겨지겨지겨지겨지겨~~~~지겨워서 못참겠어!!
-누나...제발...
난 게임 조정 스틱을 집어던지고는 거실을 데굴데굴 구르면서, 지겨 라는 말을 연발하고 있었다.
요한이와 오락시작한지 4시간째, 난 백전백승이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남겼다.
물론, 그건 모두 요한이의 실력이나 마찬가지 였다.
요한이가 악착같이 나에게 지려고 애를 썼기 때문이다.
요한이의 지친듯한 말을 들은 나는 데굴 거리면서 온 거실을 헤집는걸 중단하고는 어금엉금 기어서 요한이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쇼파에 기댄채 날 바라보고 있는 요한이의 무릎에 머리를 괴고 누워 버렸다.
무릎에 얼굴을 묻고 부비거리는 나를 요한이는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눈으로 바라 보고는 손을 들어 내 머리를 살며시 쓰다듬어 주었다.
요한이의 손길에서 느껴지는 좋은 기분에 흠취해 있던 나는 또다시 권태로움을 느끼고 어떻게 하면, 이 지루함을 없앨 수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
한참을 고민하던 난 순간 떠오르는 생각에 머리를 들어 올렸고, 내 들뜬 모습에 요한이는 불안스러운 표정으로 날 주시했다.
-요한아...
-휴우..또 왜...
-뭐 먹고싶지 않아?
뭐 먹고 싶지 않냐는 내 질문에 요한이의 눈빛이 반짝이는게 보였다.
요한이는 내가 무언가를 먹는걸 엄청 좋아한다.
내 말에 퍽 기뻤는지 요한이는 당장 주방으로 갈 기세였다.
-누나..뭐가 먹고 싶어? 뭐 먹고 싶은데? 내가 만들어 줄께!!
-아니!! 요한아...내가 너 만들어 줄꺼야..맛있는거 만들어 줄께..^^
그런 요한이를 막아서며, 난 자신만만 하게 말했고, 요한이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지는게 보였지만, 난 신경쓰지 않고 주방으로 향했다.
주방에 도착한 나는 거실에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요한이에게 소리쳤다.
-선우요한!!절대루 거기서 주방근처로 오면 안돼!!알았지?
-누나...
-대답!!!
-알았어...
요한이의 다짐을 받아낸 나는 냉장고를 뒤적였다.
그리고 내가 찾고 있는 재료가 모두 발견 되었을때, 기뿐 표정으로 재료를 다듬기 시작했다.
요한이에게 해주는 내 두번째 요리의 메뉴는 떡볶기 였다.(첫 번째 요리는 요한이가 요리에 취미를 붙이게 만든 걸작이었다.)
몇일 전에 민아가 와서 만들어 먹고 남은 떡볶기 재료가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난 민아가 했던 요리 방법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조리를 하기 시작했다.
-음..후라이팬에다가..기름이랑 물 넣고..아얏!!
한참 기름이 달구어진 프라이팬에 물을 넣은 나는 뜨거운 기름이 튀는 바람에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고, 거실에서 요한이가 금방이라도 뛰어올것처럼 다급하게 질문하는게 들렸다.
-악!!누나 괜찮아? 무슨일이야?
난 일단, 요한이가 주방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기름이 튄 손을 움켜 쥐고는 거실로 달려갔다.
그러자, 날 발견한 요한이가 재빠르게 나에게 다가왔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날 살피며 물었다.
-누나!!어디 다쳤어?
-응..기름이 손에 튀었어..아포..
-뭐? 어디봐!!빨갛게 됐잖아!!이리와!!찬물에 담그게...
-아냐..이젠 괜찮아...
난 괜찮다며, 요한이를 만류 했지만, 요한이는 속이 상했는지 버럭 소리를 지르며, 날 욕실로 거의 끌고 가다 시피 했다.
-괜찮긴 뭐가 괜찮아!! 도대체 뭘 만드는지 몰라도 그만둬..누나 아프게 까지 하면서 만든 요리 먹고 싶지않다고,,,
요한이의 질책에 난 가만히 있었고, 찬물에 담궈둔 손에서 어느정도 붓기가 빠지자, 요한이를 뿌리치며, 다시 한번 접근금지령을 내리고는 주방으로 향했다.
내가 요리를 하는 동안 내내 요한이는 시종일관 안절부절 하지 못했다.
요한이가 보이지는 않았지만, 들리는 소리를 보니, 한시도 가만히 앉아있지를 못하는것 같았다.
요한이의 염려와 걱정을 뒤로하고, 요리를 한지 1시간 만에 완성을시킨 난 좌절을 해야 했다.
주방은 온통 난리가 아니었다. 그릇 하나 제 자리에 있는게 없었고, 식탁이며, 바닥, 싱크대에는 형체도 알아볼 수 없는 재료와 쓰레기들이 난도질 당한채, 난무하고 있었다.
그렇게 요란한 배경에서 나온 떡볶기는 떡볶기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형편 없었다.
맛은 커녕 냄새만으로도 전쟁시에 무기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였다.
겁이나서 차마 맛조차 보지 못한 떡볶기를 눈앞에 두고 한숨만 푹푹 내쉬던 나는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로 향했다.
한참동안 소리가 없자 걱정이 되었는지 요한이는 주방쪽을 향해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있었고, 내가 나오자 마자 날 살펴 보고는 아무런 상처나 이상이 없어 보였는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을 건네왔다.
-다 했어? 또 다치거나 그러진 않았지?
-응...근데 요한아...
-응?
-혹시 떡볶기.....좋아해?
난 최대한 조심스럽게 물으며, 요한이의 대답을 잔뜩 긴장한채, 기다렸다.
그리고 요한이의 대답을 들었을때, 절망감에 쓰러질 지경이었다.
-어..정말 좋아해!^^ 누나 떡볶기 만들었어? 히야...
요한이의 기대감 섞인 말에 난 당황하면서 다시 재빠르게 말했다.
- 이제부터라도 싫어하면 안됄까?ㅠ.ㅠ
-무슨소리야...
-떡볶기..지금부터 싫어하면, 안돼?
내 뚱딴지 같은 말에 요한이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가만히 날 바라보더니 주방으로 향했다.
온 몸으로 요한이를 막아도 보았지만, 역시나 무리였다.
주방으로 향한 요한이를 따르던 나는 주방에 도착했을때,경악 어린 표정으로 멀뚱히 서 있는 요한이를 바라보고는 다시 한번 눈물을 머금었다.
-누나...혹시 우리집에도 테러단이 왔다갔어?
-미안...ㅠ.ㅠ 난 한다고 했는데, 생각처럼 쉽지가 안잖아..난 니가 좋아하는 떡볶기도 제대로 만들 줄 모른다구...
-어딨어?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나는 이어서 들려오는 요한이의 말에 고개를 번쩍 처들었다.
요한이는 얼굴에 미소를 띄운채, 날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눈을 땡그렇게 뜨자 요한이는 쿡쿡 웃으며, 내 머리에 잠깐 손을 얹었다 내려 놓으며 말했다.
-누나가 만든 떡볶기..어딨냐구..
-그건 왜?
-왜긴..누나가 나 줄려고 만들었는데 먹어야지!
-안돼!!그건 인간이 먹을 음식이 아니야....
-바보,,어딨는지나 말해줘. 누나가 아프면서 까지 만든 떡볶긴데 그거 먹고 죽는한이 있어도 먹을래.
요한이의 말에 감동을 받은 나는 마음 한구석이 찡~ 해옴을 느꼈다.
요한이가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날 계속 재촉했고, 난 하는수 없이 손을 들어 식탁위에 놓은 정체불명의 미확인 물체를 가리켰다.
그 수상한 음식을 바라본 요한이의 표정은 가관이었고, 난 다시한번 미안한 마음에 고개를 숙여야 했다.
그런 나의 모습에 요한이는또 다시 내 머리를 툭 건드리고는 식탁으로 다가가 포크를 집어 떡볶기를 깨작 거리면서 말했다.
-하..하...생각보다 맛은 괜찮을꺼 같아. 이게 떡이지?
'그건 어묵이야..ㅡ.ㅜ'
-이게 어묵인가?
'바보..양배추다..ㅜ.ㅜ'
-근데..이건 뭘까? 하하하..
'그게 바루 떡이다...ㅠ.ㅠ'
요한이는 계속해서 날 위로하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그런 요한이의 말은 하나같이 내 가슴에 비수가 되어 박혀 올 뿐이었다.
난 가만히 있다가 요한이가 그 수상한 떡볶기를 막 입에 넣으려는 찰라에 말을 꺼냈다.
-먹지마...
-싫어.
-먹으면 탈나.
-그래도 먹을꺼야.
요한이는 결국 그 떡볶기를 입에 넣었고, 순간적으로 얼굴을 구겼지만, 곧 웃는 얼굴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마에 삐질삐질 흘러나오는 식은땀을 감추지는 못했다.
난 끊임없이 요한이를 말렸지만, 요한이는 끝끝내 그 떡볶기가 담긴 접시를 깨끗이 비우고야 말았다.
그리고는
-맛있었어..누나.
라고 말해주는걸 잊지 않았다.
그런 요한이가 너무 고맙고 미안해서 내가 풀이 죽어있자, 요한이는 다시 말을 건네왔다.
-주방이 엉망이네...청소해줄 사람 불러놓고 쇼핑갈까?
-...응!!
-어디로 갔으면 좋겠어?
-글쎄..우리 E-MART가보자. 그런데 한번도 안 가봤잖아.
요한이와 외출할 생각에 금방 기분이 나아진 나는 잔뜩 들떠서 떠들었고, 요한이는 그런 내 모습에 미소를 짓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에 동조해 주었다.
.
.
.
.
.
.
-우와~~사람들 좀 봐!
-흐음...복잡하네.
곧 마트에 도착한 나는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분위기에 방방 떠 있었다.
요한이는 나와 달리 이런 복잡함이 맘에 들지 않았는지 시큰둥했지만, 나에게 한시도 떨어지지 않으며, 여기저기 헤집고 다니는 나를 보호 하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처음 느끼는 즐거움에 난 계속 해서 신바람이 나 돌아 다녔고, 요한이와 나의 발걸음이 멈춘곳은 과일 가게 앞이었다.
탐스러운 과일을 바라보면서 뭘 사가지고 갈까..고민하던 나는 내 다리를 쓰다듬는 조그만한 힘에 무서운 표정으로 아래를 노려봤다.
요한이 역시 내 시선을 따라 움직였고, 내 다리를 간지르는 것의 정체가 드러나자, 난 당황스런 표정을..요한이는 잔뜩 화가난 표정을 지었다.
날 간지르던건 사람이었다.
정확히 55센티 정도의 키에 많아야 세살 정도 밖에 안되 보이는 작은 여자 아이였다.
꼬불 꼬불한 까만 머리는 양 갈래로 나누어 묶여 있었고, 통통하고 분홍빛을 띈 볼에 보조개가 들어간 뽀얀 피부는 아이를 한층 더 돋보이게 해줬다.
예쁘게 쌍커플진 눈은 얼마나 큰지 얼굴의 반은 차지하고 있는것 같았다.
아이는 그 커다란 눈망울에 눈물을 그렁그렁 매단채, 조그맣고 앙증맞은 빨간 입술로 연신 나에게 오물거리며 말을 하고 있었다.
-엄마,,,엄마...
.. -야!! 꼬마!!너 뭐야?
요한이가 어린 아이를 노려보며 소리를 질렀고,지지 않고 요한이를 뚫어져라 바라보던 아이는 결국 입술을 일그러 뜨리면서 울먹였다.
난 그런 아이를 안아들어 달래면서 요한이의 머리를 강하게 내리 쳤다.
-선우요한!!너 미쳤어? 어린애하고 뭐하는 짓이야?
내 야단을 들은 요한이는 억울했는지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가장한 모습으로 나에게 변명을 늘어 놓았다.
-저녀석이 누나 보고 엄마라잖아...누난 내 와이픈데...
-ㅡ_ㅡ;;;;
-왜..왜 그런 눈으로 봐?
-너 지금 그래서 애한테 그 난리를 피웠어? 니가 엄마 뺏긴 형이냐? 하여튼 어린애야.
내 질책에 요한이는 부끄러운 건지 화가 난건지 고개를 획 돌려 버리고는 더이상 내 말에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난 그런 요한이를 잠깐 바라보기만 한 후에 별 신경을 쓰지 않고 다시 아니에게 고개를 돌렸다.
아이는 여전히 눈에 눈물을 매단 모습으로 방실 거리면서 사랑 스럽게 웃고 있었고, 나에게 엄마라는 말을 계속해서 건네왔다.
-엄마...
- ㅡ"ㅡ+
한발자국 떨어진 곳에서,아이가 엄마 라는 호칭을 사용해 날 부를때 마다 요한이의 미간이 꿈틀거리는게 보였고, 그런 요한이의 모습에 살짝 미소를 지어 보인 후에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아가야..이름이 뭐야?^^
-까르르...
-뭐가 그렇게 좋아? 이름 몰라?
-엄마...아영..
-응? 이름이 아영이구나...엄마 어딨어? 엄마...
-까르륵 엄마...엄마...
'에휴....'
아이는 엄마를 잃어 버린 모양이었다.
난 혹시나 아이의 엄마가 찾아올까 하는 생각에 그 자리에서 아영이를 찾을 사람을 기다렸지만, 아영이의 엄마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요한이는 계속 쳇쳇 거리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계속해서 옆에 가만히 서 있는 요한이가 기특해서 내가 어깨를 쓰다듬어 주자 요한이의 표정이 살짝 풀리는게 보였다.
요한이의 얼굴에 미소가 감돌자 아영이 역시 그 쪼꼬만한 손을 뻗어 요한이를 만지려고 했고, 요한이는 그런 아영이의 행동에 약간 얼굴을 찌푸렸지만, 다행히도 내치거나 하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
한참이 지나도 아영이의 엄마로 보이는 사람이 찾아 올 생각을 않자, 난 하는 수 없이 아영이를 마트 내에 있는 미아 보호소에 맡기기로 결정했다.
-가자 요한아...
-어딜?
-아영이...미아 보호소에 맞기러...언제까지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잖아.
내 말에 요한이는 반갑다는 표정으로 내 뒤를 따랐고, 아영이는 그런 요한이에게 계속해서 손을 내밀며, '부우부'라는 알지 못할 말들만 내 뱉고 있었다.
-우엥~~~
-어엉~~~~~
-엄마~~~~~~
아영이를 안고 도착한 미아보호소는 여간 시끄러운게 아니었다.
엄마 혹은 아빠를 잃고 울부짖는 아이들...아이를 잃고 정신이 없는 부모들..
나는 아영이를 데리고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다가갔고, 그 사람은 능숙하게 경황과 사정을 파악하고는 방송을 내 보냈다.
요한이는 이 소란스러움에 짜증이 났는지 자리에 앉아서 인상을 구기고 있었고, 아영이는 어느새 요한이에게 아장아장 걸어가, 재롱을 부리고 있었다.
요한이는 그런 아영이를 쳐다 보지도 않았지만, 아영이는 뭐가 좋은지 그 고사리 같은 손으로 요한이의 옷 자락을 붙잡으며, '아부아부'라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지켜보고 있던 나는 시간이 너무 많이 흐르자,끝내 아영이가 부모님을 만나는 장면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야 함을 안타까워 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요한이에게 가자는 눈치를 주었고, 요한이는 그런 내 눈치에 기뿐 표정을 지으며 일어섰다.
-지금 가려고?
-응...이제 학교 갈 준비도 해야할 꺼 같아서..
-잘 생각했어! 난 이 지긋지긋한 곳에서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었거든..^^
정말로 기뻐하는듯 한 모습의 요한이를 보자, 난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아영이를 미아보호소 직원에게 안스럽고 불안한 마음으로 맡기고는 밖으로 빠져 나오기 위해 몸을 돌린 나와 요한이는 곧 다시 몸을 돌려야 했다.
아영이가 이제까지와는 다르게 목청이 터져라 울어 댔기 때문이다.
아영이는 미아보호소 직원에게 붙잡힌채, 몸을 쭉 내밀고는 안간힘을 쓰며 우리에게 다가 오려고 노력하고 있었고, 그 직원은 꽤나 당황스런 모습으로 힘겹게 아영이를 잡고 있었다.
난 잠시 그런 아영이가 너무 가여워서 잠시 망설이고 있었지만, 요한이는 별로 게의치 않는지,무뚝뚝한 표정으로 서 있기만 했다.
간신히 마음을 추스린 나는 힘겹게 다시 몸을 돌렸고,
'퍽'하는 소리와
-어머!!
하는 직원의 작은 외침에 또 한번 몸을 돌려야 했다.
내 시선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넘어졌었는지 바닥에서 힘겹게 일어나는 아영이였다.
아영이는 꽤 아팠음에도 불구하고, 자리에서 일어 서더니 눈물 콧물로 범벅을 한 얼굴로 요한이에게 아장아장 달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요한이에게 다달았을때, 아영이는 요한이의 다리를 꼭 붙들고는 요한이의 옷에 부비적 거리며, 불분명한 말을 내 뱉었다.
-빠...아부..압빠...
아영이의 입에서 나온 뜻밖의 말에 난 놀라움을 느끼며 아영이와 요한이를 바라봤다.
요한이는 무척 혼란스런 표정으로 아영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누나...지금 이애가..
-아빠래..^^
내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던 요한이는 조심스럽게 아영이를 안아 올렸다.
그러자 그제서야 아영이는 요한이를 바라보며, 생긋 웃어 주었다.
그런 둘의 모습을 넋 놓고 보고 있던 직원이 요한이에게 다가 왔고 아영이를 받아 들려 했다.
그걸 알았는지 아영이는 요한이의 목을 더욱 더 꼬옥 움켜 쥐었고, 요한이는 그런 아영이의 반응에 흠칫 하는 모습을 보이고는 직원의 손을 멀뚱히 바라본 후.............나가버렸다.
직원은 당황해선지 무안해선지 얼굴이 붉어진채, 날 노려본다.
-뭐에욧!!!!당신들 혹시..책임 못질짓 해놓고 아이 버리려고 한거 아냐?
- ㅡ_ㅡ+++
- 나이도 얼마 되지 않은 것 같구만,,,,하여튼..
난 순식간에 책임 못질 아이 버리는 악질 부모가 되어 버렸고, 어제서야 버진에서 벗어난 나로써는 썩 좋은 기분일리 없었다.
-이.봐.여.자!!!잘들어...이딴 곳에서라도 계속 근무하고 싶으면! 선생질 한다고 성질 죽이고 있었더니 별게 다 깝치고 있어!!!아이 부모 찾으면 이리 연락해 그동안 우리가 맡을 테니까!
-어버..어버..
자신보다 어려도 한참 어릴듯한 여자에게 막 나가는 말을 들은 직원은 황당했는지 말도 못하고 있었고, 세한 그룹 대표이사 선우요한이라고 찍힌 명합을 주어들자, 꼿꼿이 굳어 버렸다.
아마도 내가 요한이의 이름을 부를때, 들은 모양이었다.
여자가 어쩌고 있던, 난 요한이를 따라서 사무실 밖으로 나섰고, 나서자 마자 요한이가 재촉하는 소리가 들렸다.
-누나. 왜이렇게 늦게와?
-..안에 잘생긴 사무원이 있잖아..연락처 받고 왔어.
-누.나...
-농담이야...바보!
-그런건 농담이라도 하지마! 알았어?
-그래..그래..군데 아영이 그렇게 데리고 나오면 어떻게 해?!!
-뭐가..빨리 따라 오기나해
요한이의 말에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요한이가 잡고 있는 아영이의 반대편 손을 잡았다.
그러자 요한이의 얼굴이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변하더니. 아영이를 안아들어 버렸다.
-왜이래?
황당해진 내가 묻자 요한이는 손을 내밀에 내 손을 움켜 쥐고는 대답해 주었다.
-나 잡고 가. 나랑 떨어지지 말란말야.
-뭐? 푸하핫..요한아...애기 한테도 질투하면, 어쩌자는 거야?
-시끄러..애기고 뭐고, 난 누나 나눠 가지는거 싫어.
귀여운 말만 하는 요한이는 자기도 쑥스러웠느지, 내 손을 붙잡고는 어디론가 향했다.
잠시후에 우리가 도착해 있는곳은 아이용품 판매점 이었다.....
-요한아..여기는 왜?
내가 의아한듯 묻자, 요한이는 대답도 하지않고, 점원에게 이것저것을 주문하기 시작했다.
요한이가 말하는 모습과 점원의 기뿐 모습을 보니 요한이는 아이에게 필요한 제품을 모두 사려는 모양이었다.
난 놀라서 요한이에게 다가가 야단을 쳤다.
-선우요한..너 미쳤어?
-왜?
요한이는 정말고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는듯 물었고, 난 또다시 설명해야 했다.
-아이용품 모두 사서 어디에 쓸 셈이야?
-어디는..아영이 주려고.
-요한아..아영이는 우리하고 얼마 못있어. 길면 하루고, 지금 당장이라도 부모가 나타나면, 보내줘야 한단말이야.
-싫어.
-엥??뭐가?
-아영이 안보내..뭣하면, 사버리지..
-사? 뭘사? 아영이를 산다고? 바보야!! 사람이 사람을 어떻게 사?
요한이는 정말로 아영이를 키우기라도 할 모양이었다.
그리고, 난 그게 불가능 하다는걸 알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요한이를 설득해야 했다.
-요한아..넌 누나가 더 좋아..아니면 아영이가 더 좋아?
-누나...누나가 어린애야? 그런걸 물어?
-빨리.....
-만약에 아영이가 다치기라도 한다면, 난 속상할꺼야. 근데 누나가 조금이라도 다친다면, 난 슬퍼서 미쳐 버릴지도 몰라. 아영이가 나 말고 어떤 남자를 더 좋아한다면, 난 섭섭할꺼야..근데 누나가 그랬다간....죽어버릴꺼야! 아영이가 귀엽게 웃으면, 사람들한테 다 자랑하고 보여주고 싶어. 근데 누나가 그렇게 웃으면, 난 누나를 가둬두고 나 혼자 독점하고 싶어진다구...아영이가 갑자기 없어진다면, 난 허전할꺼야. 근데 누나가 그렇게 된다면, 난 존재하지 않는거나 마찬가지야....대답이 됐어?
물론 충분한 대답이 됐다.
요한이가 얼만큼 날 사랑하는지 간접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난 그런 요한이에게 싱긋 웃어 주고는 다시 입을 열어 요한이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알겠어.요한아..근데 들어봐. 난 지금 아영이한테 널 뺏기는 기분이야..
-누나! 그런...
-들어봐...난 아직은 요한이하고 둘만 있는게 더 행복하다구..아영이도 우리와 있는것 보다 부모님과 함께 있는게 더 행복한 법이라구,,,
-알겠어...
요한이는 섭섭했는지, 아영이를 한번 바라보고는 쇼핑목록 에서 옷가지 몇벌, 침구세트, 장난감을 제외하고는 모두 지워 버렸다.
점원은 오랜만에 만난 봉을 놓쳐선지, 날 묘한 눈초리로 째려 보고 있었다.
'오늘은 정말..피곤한 날이야...'
쇼핑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아영이를 씻기는 일일었고, 요한이가 한 일은 아영이에게 먹일 음식을 만드는 일이었다.
아영이가 날 붙잡고, '엄마..맘맘..'을 외쳐대자 바로 부엌으로 달려가는 요한이였다.
요한이가 얼마나 지극정성으로 기분좋게 음식을 만드는지, 정말로 질투가 날 지경이었다.
아영이를 내 무릎에 앉게 하고, 요한이가 아영이의 입에 음식을 떠 넣고 있을때, 초인종 소리가 들려왔다.
'벨렐렐레...벨렐렐레...'
-누구야?
-바보..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내가 아영이 안고 있으니까, 니가 나가봐.
-알겠어..
요한이가 나가고 잠시 후에 들어온 사람은 민아였다.
민아는 나와 아영이를 보더니 소리를 꾁 지르고 말했다.
-꺄~!~~>0< 이게 왠일이야? 아이잖아!!!선우요한!!!!이자식 어딨어? 내가 이자식 이럴줄 알았어!!어린나이에 돈쥬앙, 카사노바,의자왕 안부럽게 지내더니, 드디어 일냈구나!! 소다야! 넌 배알도 좋다. 요한이가 어디서 만들었을지 모르는 아이가 뭐가 이뿌다고,,,
-한민아..죽을래?
민아의 망발이 끝 모르고 치닿고 있을때, 더 이상 이대로 방치하면, 안되겠다..싶어서 민아의 말을 잘랐다.
민아는 말과는 반대로 아영이를 내 무릎에서 낚아채가, 품에 안고 부비적 거리며 생각하기도 싫은 말을 내뱉고 있었던 것이다.
민아는 아이들을 광적으로 좋아한다.
뭐..거의 개와 고양이 좋아하듯, 좋아하는것 같았지만, 어쨌든 좋아하기는 한다..ㅡ_ㅡ;;(사실, 난 그런 잔인한 면의 민아가 두렵다...)
민아는 계속해서 아이를 바라보면, 생크림을 앞둔, 고양이 같은 눈을 하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잡아 먹을 듯한 그 눈빛에 지레 겁먹은 요한이가 아영이를 빼앗듯 안아 들었고, 민아는 서운하다는 듯이 아영이에게 시선을 두고 있었다.
-유다는?
내가 먼저 입을 열어 유아에 대해서 묻자, 민아의 얼굴이 나에게 돌아와 사악한 미소를 머금은채 대답했다.
-그자식..나한테 30분간 맞고, 30분간 키스 당하고,집에 있을껄? 케케..
-살아서..있는거지?
난 진심으로 걱정이 담긴 목소리로 물었다.
민아가 진심으로 30분간 팼다면, 이미 이세상 사람이 아니거나 사람 구실 못한다는걸 알기 때문이다..거기다가 30분간이나 키스를 했다니..
-왜? 그래도 키스 한번 했다고 걱정돼냐? 걱정마라. 집에서 반성문 100장 쓰면 모두 용서해 준다고 했으니 그거 쓰고 있을거다..
-우리 누나가 왜 유다 같은 자식을 걱정해?!!!
민아의 말에 흥분한채, 대구한건 내가 아니라 요한이였다.
민아에게 내가 유다와 키스했단 사실을 다시 듣자 열이 받았나 보다.
그러나 민아는 콧방귀만 한번 뀌고는 나에게 말을 건넸다.
-소다야..솔직히 말해봐. 그 아이 요한이 애 맞지?
-맞고 싶냐? 아주 친구를 이혼녀 만들려고 작정을 했구만..
-킥..그게 평생 내 삶의 목표 아니겠니?
-너의 자아실현에 큰 장애가 되서 미안하게 됐다. 그리고 너한텐 유감이지만 아영이는 내 아이야...
-에엑!!!!!!!!!!0.0!!!!!!!!!!!!!
내가 농담으로 던진 말에 민아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푸하하하하...
그 모습에 요한이가 웃음을 터뜨렸고, 민아는 그 웃음에 정신을 차렸는지, 다시 일어나 살~~짝 날 야렸다.
하지만, 요한이가 내 앞에 다가와 털썩 주저 앉아 그 눈초리를 대신 받았기 때문에 민아의 의도는 무산되고 말았다.
-내 와이프를 그런 찐~~한 눈동자로 바라보지 말라구..닳.아! 그리고 누나 바보아냐? 소다누나가 내 아이 외에 다른넘 아이 만드는게 가능할리 없잖아..응?
-쳇!!그 대단한 자신감은 뭐냐? 그래서 맨날 속좁게 질투나 해서 소다가 다른 남자하고 눈 마주치기만 해도 성질내나 보지?
-나야..소다누나를 믿지만, 다른 자식들을 믿을 수 없어서 그런거지.
- 어련 하시겠어..
요한이와 민아는 정말이지 못 말릴 관계다.
천하의 원수 같기도 했다가, 내가 관련되면 지나치게 우호적인 관계가 된다.
이 둘을 이제 그만 뜯어 말려야 겠다고 생각하고 있을때, 굳이 내가 나서지 않아도 모두의 시선을 끌 만한 소리가 들려 왔다.
'빰빰빰,빰빠, 밤~~빰 빠라빠빠빠빠 빰~빰...'
온 국민이 다 아는 소리....전국 노래자랑 오프닝곡...바로 내 핸드폰 소리였다.
-소다..너, 제발 평범한 벨소리 좀 해 놓으면, 안돼?
-너는 평범하게 타잔 소리를 해놨냐?
민아의 말에 꼬투리를 달아 주고는 요한이의 시선을 받으면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아..아가씨..저 김실장입니다..]
뜻 밖에 내 전화에서 울려 온 목소리는 요한이 회사 상급 직원이었다.
-아!!무슨 일로 제게...
-[혹시, 도련님과 같이 계십니까?]
-네..지금 옆에 있어요. 왜 그러시는데요?
-[갑자기 급한 회의가 생겼는데 집 전화도 안돼고, 도련님 핸드폰도 꺼져 있더라구요..]
김실장의 말에 난 거실에 놓인 전화기를 바라봤다.
전화가 안되는게 당연했다.
아영이가 수화기를 들고 장난을 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난 요한이에게 핸드폰을 넘기고는 아영이에게 다가갔다.
아영이를 안아들고, 요한이를 바라보니 짜증 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회의에 참석하기 귀찮아서 저러는게 분명했다.
아영이가 내 관심을 끌려는듯 머리카락을 잡아 당겼고,그런 아영이에게 웃어 보이자 민아가 슬그머니 다가와 말을했다.
-정말 이애 어떻게 된거야?
-마트에 놀러 갔다가 미아가 된 아이야..
-뭐야? 그럼 미아보호소에 맡겨야지, 데리고 오면 어떻게 하니?
-그랬는데, 부모가 안 나타나잖아. 우리가 가려고 하니깐 울고불고 난리를 치는데 안스러워서...
-그렇다고 집에 데리고 와?..소다 넌 쓸데 없이 마음만 약해..
-내가 아니야...
-뭐?
-내가 데리고 온게 아니라 요한이가 맘데로 데리고 나온거야..난 사무실 직원한테 부모 찾아오면 연락하라고 연락처만 넘겼다구..
-0.0!!
민아는 정말로 놀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아직도 전화하고 있는 요한이를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바라봤다.
-저 괴물이 그랬단 말이지?
-니 형부한테 말이 심한거 아냐?
난 민아를 가볍게 타박했지만, 민아는 전혀 엉뚱한 소리를 내 뱉고는 불쌍하다는 듯이 혀를 끌끌 찼다.
-너도 참..안됐다. 쯧쯧..
-무슨 소리야?-_ㅡ++
-두고봐...아영이 보내고 나면, 저 자식 분명히 너한테 아이 낳자고 조를 테니까..아~인간, 유소다의 전성시대는 이렇게 사라지는구먼....
민아말을 듣고보니, 그랬다.
정말 그러고도 남을 요한인데 그걸 어떻게 감당해야는지....
내가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을때, 요한이가 다가왔다.
표정이 일그러진게 결국 나갈 모양이다.
늘 생각 하는거지만, 김 실장님 정말 대단하다.일하기 싫어하는 요한이를 매번 그렇게 끌어내다니..
-누나...나 나가봐야 할것 같아.
-쿡..그래. 또 당했구나.
-젠장!!내가 회장이 되면, 김실장님 부터 자르던지, 회장직을 아주 줘버리던지 할꺼야!!아니지! 누나 먹여 살리려면, 회장직 넘기면 안돼고,,역시 자르는게...
-바보야...헛 소리 하지 말고 빨리 준비해..^^
-알았어..오늘은 누나랑 하루 종일 있고 싶었는데..
-충분히 오래 있었어.
-이게 충분해? 애정이 식었어...
-그럴리 없잖아..
-옷 골라줘..
-응....
나와 요한이는 민아의 눈꼴시다는 표정을 뒤로한채, 드레스 룸으로 향했다.
정장으로 빼입고, 누크 대신에 갭을 뿌린 요한이에게서 남성다움이 물씬 풍겨 나왔다.
-나 멋있어?
-응..^^
-안돼는데..나 멋있어서 딴 여자들 늘어 붙으면, 우리 누나 속상한데..
-킥..알면됐다.
-갔다가 금방 올께. 절.대.로. 밖에 나가지마. 확인 전화 할테니깐..
-^^;;어...
-저녁은 어떻게 하지? 누나 밥 못차려 줘서..
-민아 있잖아..
-그래 민아 누나한테 하라고 그래.
-놀구들 있다. 내가 이집 식모야?
-누나..우리 소다누나 저녁 굶기면, 알아서해..
-그래두 저넘이...
-쿡..요한아,늦겠다. 빨리 가봐...
요한이와 미아의 2라운드가 펼쳐질듯 해 보이자, 난 서둘로 요한이를 보냈다.
나와 아영이에게 키스를 해준 요한이는 가기 싫다는듯, 밖에 세워진 리무진에 올랐고, 리무진이 시야에서 멀어지자,난 숨을 돌리고 집안으로들어왔다.
그제서야 난 민아와 축제에 참가하기로 했다.시계를 보니,6시..지금쯤 각종 이벤트에서 참가자를 받을 시간이었다.
난 일어서서 나갈 준비를 하다가 순간, 아영이를 떠올리고 고민에 빠졌다.
-근데..아영이는 어떻게 하지?
-흐음..그러게. 갑자기 딸린 자식이 생겨서...아!!
말을 하던 민아는 갑작스럽게 말을 멈추고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잠시후에 유다가 헐떡이면서 문앞에 서 있었다.
-신유다..5분안에 오라고 했지. 2분 초과야..
-선생님...저희 집에서 여기까지 얼마나 된다고 생각 하시는 거에요?
-좋아...너 지금부터, 이 아이랑 요한이 집에 있어,
민아의 갑작스러운 말과 불쑥 눈앞에 나타나 까르륵 웃는 아이를 보고 유다는 놀란 눈을 하면서 나에게 물었다.
-이게 누구 아이에요?
-훗..민아가 어디서 하나 낳은거야..그동한 민아 어머님이 데리고 있었는데...
-선생님!!!!진짜에요? 애아빤 누구에요?
-누구면 어쩌게?
-죽.여.버.리.게.요.
-풋..오버하지마...어쩜 넌 우리 요한이하고 그렇게 닮았냐?
-저 지금 심각해요.
유다는 정말 진지했다.
하지만, 민아는 별거 아니라는듯 유다의 뒷통수를 한대 갈겨주고는, 아영이를 덮썩 안겨준채 아무런 대답도 없이 나를 이끌고 나와 버렸다.
뒤에서 당황한 유다가 아영이를 안고 달려오고 있었지만, 이미 차에 올라 있는 우리를 따라 오지는 못했다.
유다는 아마 우리집에서 아영이와 깊은 고뇌를 맛보아야 할 것이다.
-쿡..
-왜웃냐?
내가 느닷없이 웃음을 터뜨리자, 민아가 물었다.
-한민아,,,사실은 너, 유다랑 내가 키스한거 엄청 기분나빴지?
-실없는 소리..
-에이~솔직해라..
-시끄러!!!그래 열받았다. 너마 아니었음, 죽었어!!
난 갑자기 폭주한 민아를 재미있다는 듯 바라 보고만 있었다.
차에 오른지, 1분도 안돼 도착한 학교 앞은 어느때 보다도 소란스러웠다.
지금까지와 다른 점이 있다면, 나이든 어른이나 어린 아이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가지 더..여자고 남자고 모두 온각 멋을 다 부리고 온 표가 역력히 드러났다.
차에서 내리는 나와 민아는 그다지 튀거나 꾸미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의 시선을 담뿍 받아야 했다.
하긴..제규어에서 내리는 177센치 장신의 미녀 둘을 동시에 구경하는건 흔한일이 아니니까..
사람들의 시선을 뒤로하고 민아가 날 이끌고 간 곳은 여러 이벤트 중에서도 가장 큰 무대가 있는곳 이었다.
-어서 오세요....접수 하시려구요.
우리를 맞은 사람은 그다지 크지 않는 여자애 였다. 단발 머리에 전체적으로 큼직큼직한 눈,코,입을 가지고 있는 아이는 어디서 많이 본듯,한 인상이었다.
-우리도 참가할꺼야.
-흐음..그런데, 두분은 교생이시긴 하지만, 선생님 아니신가요?
-그래서?
-참가자격에...
-이것봐. 이름이..유채리라고 그랬지?
-네.
-아!!맞다...영신 고등학교 학생회장..ㅋㅋ
드디어 그 여자애가 누구인지 떠올랐고, 부득이 우릴 참가 시켜주지 않는다는 채리에게 내가 말을 걸었다.
-온갖 써클과 부서에서 들어온 로비자금을 꿀꺽하고, 지원 자금이라던지, 후원금, 심하게는 장학금까지 먹어버리는 등 부정부패를 일삼는 영신고 최고의 비리와 트릭으로 둘러 싸인 범죄집단.학생회..그곳의 우두머리인 학.생.회.장.유.채.리..이건 선생 빼고 모두 알고 있는 공공연한 비밀이라지?^^ 아무리 학생회장이라도..그게 알려지면, 너의 그 오점 없는 생활기록부에 흠집이 날텐데....
얼마전에 재미있다는듯 말한 요한이의 말을 토대로 약간의 공갈과 협박을 곁들이자, 채리는 당황스런 표정을 짓다가는 곧, 음흉한 표정으로 바꾸며, 번호표를 내밀었다.
-킥킥..좋아요..거래 성립입니다. 저기로 가시면, 옷이랑 화장도구가 마련되어 있어요..케케...
-상품은?
-팔린 가격의 30%와 힐튼 호텔 일일 숙박권이요...
-숙박권은 관두고, 7:3
-네?
- 70% 우리 몫으로 주라고.
-그건...곤란해요..
-어짜피, 나머지 돈은 학생회가 꿀꺽 하는거아냐?
- 하지만,,,
-흐음..싫어?
-65%드릴께요..
-싫어.
-선생님..
-교장실 전화번호가..
-좋아요..ㅠ.ㅠ
난 결국 승리했고, 민아에게 뿌듯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민아는 그런 나에게 싱긋 웃어 주고는 번호표를 받아든채, 무대 뒤에 마련된 탈의실로 먼저 다가갔다.
-유채리..거래 성립된거..축하하자구! 고맙다...
-모쪼록 비싼 가격으로 팔리시길 빌 뿐이에요..흐흐흐~
채리는 생각보다 잘 적응하는 아이인 모양이었다.
방금까지, 패배감에 절어있던 모습은 사라지고 다시 예의 그 음흉한 표정으로 돌아와 있었다.
학생회장과의 대화를 마치고, 민아를 들어 온 탈의실에는 울 뿐만 아니라 꽤나 잘 빠진 여자들이 많이 있었다.
난 민아를 찾아갔고, 민아는 옷걸이를 뒤적이며, 옷을 고르고 있었다.
-민아야..근데 우리가 참가하는 이벤트가 뭐야?
-몰랐어? 노예팅...
-휴우...내가 이런데 나온걸 알면, 요한이 날 죽이려고 할텐데...
-야!!끔직한 소리 하지 말고 옷이나 골라봐..
-이게 옷이냐?
-그러거 같아..대부분이 비키니 수영복이지만.
-차라리 비키니가 덜 야하다...키득 오랜만에 입어보는 스타일이네..
-그러게 말야..너 요한이 만나고 이런옷 입은적 없지? 덩달아 나까지..
쿡쿡 거리면, 민아와 내가 이것저것 입어 본 후 가장 맘에 드는 옷을 골랐다.
민아는 은색의 반투명은 아니더라도, 자세히 본다면 속살이 보일듯한, 비키니에 랩 스커트를 걸치고는 흡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난 아무래도 유부녀 이다 보니까 최대한 자제해서 옷을 골라야 했다.
그래서 고른 옷이 상아색 비키니(얼듯 보면, 옷을 입은것 같지 않다.)에 갈갈이 찢어진, 것도 내가 지금까지 입어본중에 가장 짧은 핫팬츠다.
옷을 모두 입고 최대한 진하게 화장을 한 민아와 나는 정말로 흡족해 하면서 주위를 둘러 보았다.
옷을 입어보면서 장난을 치느라고 정신이 없어 보지 못했었는지 주위엔 아까보다 훨씬 많은 여자들의 곱지 않은 눈으로 우릴 노려 보고있었다.
그 시선을 185센치(힐+본래키)로 간단히 깔아 뭉개고는 분해하는 그 여자들을 보며 즐거워 하고 있을때, 이 이벤트의 메니저로 보이는 학생하나가 들어와 준비를 알렸다.
주위의 여자들이 한명씩 나갈때 마다, 엄청난 환호가 들려 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민아와 내 차례가 다가왔고, 민아와 나는 동시에 무대로 걸어나갔다.
우리가 나갔을때, 가장 먼저 나타난 반응은 침묵이었다.
조금 지나자, 술렁거림이 들렸고 잠시후에는 학교가 터져버릴진 않을까? 걱정하게 될만큼, 어마어마한 함성이 들려 왔다.
참가자들이 모두 나오자 커다란 음악 소리와 함께 춤을 추라는 사회자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나와 민아를 포함한 모두가 춤을 추기 시작했다.
정말 오랜만에 춤을 추는 민아와 난 정신없이 신이나서 서로에게 의지하며, 춤을 추었고 우리가 몸을 부대끼면거 최대한 요염하게..섹시하게 움직일때마다 관중들은 거의 광기를 보였다.
한참을 들떠서 춤을 추던 난 순간, 한기에 몸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 보았다.
-(왜그래?)
-(몰라..갑자기 한기가....)
-(기분탓이야..)
-(그래..)
민아의 말에 곧 그 기분을 잊었고, 드디어 경매가 시작되었다.
여기 저기서 액수를 부르는 소리와 팔린 여자들의 환성소리가 들렸고, 나와 민아의 경매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었다.
액수가 올라갈 때 마다, 우리는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어야 했다.
그리고 어느정도 시간이 지났을때, 나는 뒤에서 잡아당기는 남 학생에게 팔렸다는 기분 좋은 소리를 듣고는 무대 뒷쪽으로 걸어 내려갔다.
날 산 사람에게 돈을 물어 주고, 보내 달라고 말할 셈이었다.
어짜피 내 목표는 요한이 도움 없이 번 돈이었고, 그렇다고 그것 때문에 남편을 두고 다른 남자와 놀 생각은 티끌 만큼도 없었다.
그러나, 내가 두리번 거리면서 날 산 사람을 찾았을때, 난 말도 꺼내지 못하고 그 남자의 힘에 이끌려 후미진 곳으로 끌려가야 했다.
겁에 질린채, 민아를 찾았지만, 민아는 아직 무대에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놓아줘요..이봐요!!제발 놓아줘요..돈은 제가 드릴께요..
난 남자에게 놓아달라고 말하며, 어두워서 보이지 않는 남자의 얼굴을 보려고 노력했다.
혹시나 요한이가 아닐까..하는 의심이 들어서 더욱 얼굴을 보려고 기를썼지만, 그 남자가 입을 열어 무슨 말인가 꺼냈을때, 난 깊은 절망감을 느껴야 했다.
-시끄러워. 돈은 필요 없어, 내가 오늘 하루 당신 주인이니까, 내가 하고 싶은데로 해도 되겠지?
요한이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요한이보다 월씬 던 낮은 저음...
난 눈앞이 깜깜해지는걸 느껴야 했다.
-놔! 빌어먹을!! 이거 놓으래두!!
-................
-야 이 나뿐넘아!! 난 남편에 이뿐 딸까지 있는 몸이란 말이야!!
-...............
낯선 남자에게 계속 끌려 오면서도 난 반항하는걸 멈추지 않았다.
아니, 멈출 수 없었다.
겉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온갖 두려움과 좋지 않은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한이가 미쳐 날뛰어도 좋으니 이번엔 좀 나타나 주었음..하는 간절한 생각이 들었다.
내 말과 저항을 게속 무시하고 후미진 곳으로 한참을 걸었던 남자는 낡은 옛 체육창고에 도착하자, 날 거의 집어 던지다 시피 건물 안으로 몰아 넣었다.
이상한건 내게 거칠게 대하는듯 하면서도 상채기 하나 나지 않게 은밀히 신경쓰는 남자였다.
쾌쾌한 먼지가 자욱한 건물에 내동댕이 쳐진 난 다가오는 남자를 피해 앉은채로 뒷걸음을 쳐야 했다.
하지만, 그 남자는 그런 내 행동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나에게 다가왔다.
겁에 질린 나는 그 남자를 향해서 손을 내둘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내 가늘기만 한 손은 남자의 몸에 닿기도 전에 붙잡히고 말았다.
내가 두려움에 바들바들 떨고 있는 반면에 남자는 즐기는듯 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화난듯한 느낌을 뿌렸다.
-이..이거 놔!!
-못 놓겠다면??
-이..이 비열한..
-흐음...노예팅에 나가서 팔린건 노예아냐? 그걸 산 사람은 주인이고..설마 모르고 그런곳에 나간건 아닐텐데..
-너같은 개자식 한테 팔리려고 나간건 아니었어! 당신이 지불한 돈의 두배를 주겠어! 날 지금 당장 보내준다면...
-흐음...괜찮은 제안이긴 한데..
그 남자의 말에서 약간의 흔들림이 보이자 난 온 신경을 집중 시켜 잔뜩 긴장한채로 대답을 기다렸다.
하지만, 남자의 대답은 실망스럽기 그지 없었고, 불쾌감까지 안겨 주었다.
그 남자가 하얗고 가는 손가락으로 내 입술을 쓰다듬으며, 말했기 때문이다.
-괜찮은 제안이기는 하다만! 유감스럽게도 난 그깟 돈 몇푼 더 얻는것보다 당신하고 하는 키스 한번에 더 마음이 끌리는걸?
-뭐야!!!
난 최대한 화난 목소리로 고함을 치고는 남자의 손에서 빠져 나가려고 했지만, 불가항력이었다.
내가 난동을 부릴 기세를 보이자, 그 남자의 입술이 덮쳐 왔다.
어떻게든 벗어나야 겠다는 생각으로 가득찬 난 죽을 힘을 다해 발버둥 쳤고, 내 힘이 어느정도 고갈되어 그 사람의 입술의 감촉을 느낄 수 있을즈음에 온 몸의 힘을 모두 풀어 버렸다.
그런 내 행동에 움찔 하면서 키스를 잠시 중단했던 남자는 다시 키스를 건네왔고, 난 그키스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러자 그 남자는 날 있는힘껏 밀어 젖혔고, 그 힘에 나는 저만큼 나가 떨어 져야 했다.
엉덩이에서 느껴지는 약간의 고통에 인상을 쓰던 난 고개를 들어 어느새 서서 날 노려보고 있는 남자를 올려다 보았다.
그 남자의 얼굴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번뜩이는 눈이 여간 화난게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런 모습의 남자를 보면서도 난 이제 전혀 두려움을 느낄 수 없었고,내 입가에 살며시 미소가 피어오려는 찰라에 그의 목소리가 울렸다.
여전히 낮은 저음에 분노까지 깃들인채, 텅빈 건물안에 울리는 소리는 아무리 믿는 구석이 있는 건장한 남자라고 두려움에 떨게 만들기 충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여전히 얕은 미소까지 띄고는 그 남자가 하는 말을 듣고 있었다.
-더러워..당신은 아무 남자하고 그렇게 키스하나 보지?
-쿡..아무 남자하고는 아니지. 난 맘에 드는 사람하고만 키스하거든?!
-하!! 웃기는군..그럼 방금까지만 해도 죽일듯 하던 내가 갑자기 맘에 들었나 보지?
-내 남편 만큼이나..
내 마지막 말에 남자는 거의 이성을 잃는듯 해 보이더니 날 향해 손을 들어 올렸다.
아무리 봐도, 누가 봐도 날 때리려는 제스쳐 였다.
난 무의식적으로 몸을 움츠렸고, 그 남자는 그런 내 모습에 힘없이 손을 내려 놓았다.
그리고 때리는 대신에, 자신의 마이를 벗어 나에게 집어 던진 다음,
-입으라구! 꼭 뭐 같아 보이니까..
라고 말한 그는 날 한번 더 노려 본 후에 휙 돌아서 나가 버렸다.
하지만, 곱게 나간것은 아니다.
나 대신 얻어 맞은 창고 문은 찌그러져 원래의 구실을 하지 못한지 오래 였다.
창고에 혼자 남게 된 난 입가에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은채, 일어서서 옷을 추스렸다.
-하여튼!!하는짓이 갈수록 귀엽다니까..^^
혼자 재밌다는듯 중얼거린 난 곧바로 그 음침하고 기분 나쁜 곳을 빠져 나와 여전히 이벤트가 열리고 있는 무대 뒤로 걸어갔다.
역시나 그곳에는 초조한 모습의 민아와 아영이를 안고 인상을 찌푸린 유다, 그리고 요한이의 보조 비서인 민정씨가 있었다.
내가 다가가자 가장 먼저 날 알아챈, 아영이가 빙그레 웃으며,나에게 오려고 바둥거렸다.
그런 아영이의 모습에 모두들 나에게 시선이 모였고, 난 태연하게 아영이를 받아들며, 입을 열었다.
-민정씨..오랜만이에요?!!^^
-아!!소다씨...저, 저기 도련님은..
민정은 걱정스럽다는 듯이 내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내 모습을 보니 꽤나 걱정된 모양이었다.
사실, 민정을 싫어 했던 때가 있었다.
항상 요한이와 함께하는 민정이 못 마땅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민아만큼이나, 소다에게 좋은 친구가 된 사람이다.
난 그런 민정의 마음을 알아채고는 밝게 웃으며, 명랑하게 대답해 주었다.
-그녀석! 어디서 열받아 있을꺼에요!!
-네?
-못된녀석!! 어디서 하늘같은 아내를 놀래켜? 그나저나 민정씨 그녀석 음성 변조기 어디서 난거에요??
-아..회사 계열사에서 만든 제품인데 그걸로 소다씨 놀래 준다면서 하나 빼 놓으신 거에요..^^
-확실히 성공하기는 했군요!!
-^^;;
민정과 대화를 하던 난 유다에게 날카로운 눈초리를 던졌고, 급작 스럽게 받은 내 눈빛에 대비하지 못한, 유다는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신유다군...
-......
-아주 사랑 스러운 짓을 했던데??
-...ㅜ.ㅜ 죄송해요..
-너 이자식!! 요한이가 혹시 술이라도 한 모금 했으면, 넌 내손에 죽을 줄 알아! 알겠어?
요한이가 그 기분으로 술이라도 했다면, 정말 난리가 아니었다.
세한 그룹 소속 변호사들이 다시 한번 골치 썩을 일까지 저질렀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내 말에 유다는 뭔가 굉장히 억울 하다는 표정으로 무슨 말인가를 하려고 했지만, 민아가 옆구리에 가한 가격 때문에 내 뱉을 수 있는 말은 고작 '윽!'한 단어 뿐이었다.
난 그런 유다를 한번 더 노려 보고는 긴장해 있는 민정에게 핸드폰을 빌려 요한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띠리리...띠리리리..띠리리리...철컥!]
-[ 뭐야!!]
핸드폰을 꺼놓을 정신도 없었는지, 몇번의 신호음 끝에 요한이의 짜증 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행히도 목소리에는 짜증 스러움에 묻어 났을뿐, 취기 같은게 느껴 지지는 않았다.
난 목소리를 가다듬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나야...
-[................]
-나라고....
-[...........]
-지금 어디야??
-[회사..]
-흐음...나 방금 무슨일 있었는지 알아?
-[..........]
-선우요한.....
-[..왜..]
-야!!!!!! 이 나뿐 자식아!! 회사가 어쩌고 어째? 저 1분 이내로 나 데리고 나간 곳으로 안오면 알아서 해 알았어?
-[무슨...]
-나 평생 안보고 싶지?
-[달깍...]
요한이가 핸드폰을 꺼버리자, 주위의 심상치 않은 눈초리와 함께 몇몇의 걱정 스러운 목소리가 들려 왔다.
-소다야...니 심정 모르는건 아니다만은..요한이가 잘못을 하기는 했냐?
-뭐야??!! 날 놀래켰잖아! 그래 놓고 지놈이 먼저 성질 내고 사라져?
- ㅡ_ㅡ;;객관적으로 봤을때, 난 니가 요한이한테 사정을 해도 모자라다 본다..
- 흥!! 내 주관적인 견해는 니 의견에 적극 반대하는 바이다.
-야...
-기각!!
-선생님...
-너도 할말있어?!!ㅡ_-+++
-아,아뇨..ㅠ.ㅠ
-소다씨..도련님 화 많이 나셔서 이리 달려 오셨어요..회의도 엉망이 되버렸다구요..
-저도 화 많이 났다구요!! 내가 누구 때문에 이딴 짓을 한건데...흑!!
민아와 유다, 민정에게 톡톡 쏘아주며, 대답하던 난 불현듯 밀려오는 서러움에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모두들 그런 내 모습에 당황하고 있을때, 눈물로 흐릿 해져 있는 내 시야에 요한이가 잡혔다.
요한이는 최고 속도로 달려 왔는지 남방과 얼굴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고, 숨도 고르지 못했다.
나와 눈이 마주친 요한이는 숨이 차서 그런지 짜푸렸던 얼굴을 순식간에 굳힌채, 나에게 성큼성큼 다가왔고, 날 꽉 끌어 안으며, 말했다.
-무슨일있어? 누가 누나 괴롭혀?
아까전에 날 때리고 싶은 충동으로 손까지 들어올린 요한이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런 요한이의 모습에 안심이된 난 울음을 그치고, 요한이의 품에서 벗어났다.
그리고는 손을 들어 있는 힘껏 요한이의 뺨을 내리쳤다.
막으려고 맘만 먹으면, 충분히 막거나 피할 수 있는 내 손을 요한이는 그대로 방치해 두었다.
'휘~~익!'하는 파공음과 '쫙!!'하는 마찰음에 놀란것은 요한이 아니라 민아, 유다, 민정이었다.
[펌] 내남편은 고등학교 1진 짱 - 28~31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