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역시 요한이의 시선이 머무는 곳으로 눈을 옮겨야 했다. 요한이의 얼굴의 포커페이스가 무너지더니 소름끼치도록 험악해져갔기 때문이다.
내 어깨를 본 나는 화들짝 놀랐다. 민규의 손이 여전히 내 맨 어깨를 쓰다듬고 있었다는것을 그제서야 깨달았던 것이다.
나는 서둘러 민규의 손을 어깨에서 치우려고 노력했다.
-미,민규야..손치워..빨리.
-머? 왜?
-잔말말고 죽고 싶지 않으면 당장 치우란 말이야!
난 다급한 마음에 민규를 재촉했지만 민규는 내 그런 마음을 알지 못 한채, 영문을 몰라하며 답답한 질문만 하고 있었다.
그때, 아이들이 다시 소란스러워 졌다.
요한이가 무서운 얼굴을 한채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난 재빨리 민아와 유다에게 도움을 청하는 눈빛을 보냈지만 소용없었다.
민아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가슴에 성호를 긋고 있었고, 유다 역시 자신도 어떻게 할 수 없다는 안타까운 시선만 보내 올 뿐이었다.
내가 안절부절 못하자 민규도 이상하게 여겨졌는지 거의 코 앞에 다가 온 요한이를 바라봤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뿐이었다. 어느새 바로 앞에 다가온 요한이가 민규의 목과 내 어깨에 닿아있던 손목을 비틀어 버린후 가볍게 던져 버렸기 때문이다.
가게 안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다른 동창생들은 민규의 안위를 살피느라 바빴고, 민규와 그다지 친하지 않은 아이들과 다른테이블의 손님들은 흥미롭다는 시선으로 여전히 요한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요,요한아.....
-...........................
주위는 난리가 아니었고, 나 역시 조심스럽게 요한이를 불러 보았지만 요한이는 아무런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아까의 험악한 표정도 사라진지 오래였고, 요한이의 얼굴에는 다시 차갑기만 한 무표정이 되어 있었다.
-요한아...잘못했어....
-.............흐음...저놈이 민규인가 하는 놈인가 보지?
-어? 아..그래...
-쿡! 어때? 남편 몰래 옛 사랑 만난 소감이? 아...안들어도 알고 있었지...꾀나 즐거워 보이던데...
-요한아...미안..누나가 잘못했어...
-관둬..저 자식 만날땐 반드시 나랑 동행한다고 했지..나 없을때, 외출하지 않는다고 했고, 딴 놈한테 눈돌리지 않는다고 분명히 말했지? 내가 의심할만한 짓도 절대 안하고 나 불안하게 만들일 절대 없을거라고 확실히 약속했던거...기억은 해?
-요한아...미안..미안해..그리고 난 민규한테 눈 돌린거 아니야. 그냥 오랜만에 만난 친구라 반가워서..그래서..장난친거야..니가 불안해 할일 같은거...
-시.끄.러.누나가 그렇게 나한테 변명하는거, 나 바보 만드는것 밖에 안되니까..누난 나하고 한 약속을 어겼어. 하나도 아니고 다섯가지나.
-미안.....
-너한테 그딴 소리 듣기 싫어.
-요한아.....
-내 믿음을 저버렸어. 날 배신한거나 마찬가지야. 내가 분명히 말했지? 넌 몸도 마음도 다 내꺼니까 나 외에 다른놈이 손데는거 절대 용서 할 수 없다고.
-난..그러니까..그게..아니라..
난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감해 졌다. 동기야 어떻든 민규가 내 어깨를 쓰다듬게 나둔건 분명히 부인할 수 없는 내 잘못이였고, 요한이가 용서 할 수 없다고 말한 행동이었다. 불순한 마음이 아니었다는건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요한이가 알아듣도록 설명하기란 어려웠다. 더군다나 지금 상태의 요한이라면 더더욱 말 다한 셈이다.
-..........할..말..없는...거야? 변명도.... 못하는거야? 제길!!
요한이는 아까와 약간 다른 태도를 보였다.혹시나 하던 기대감이 부서지면서 나오는 절망적인 표정을 지었다.
요한이는 발로 가장 가까이 있는 테이블과 화분을 걷어차 버렸다.
주위의 시선이 모두 쏠렸지만 아무도 막아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요한이의 친구라고 말하는 유다역시 예외일 수 없었다.
난 요한이를 말려야 했다. 저대로 두면 요한이가 폭주해 이성을 잃을 것이라는 걸 잘알고 있기 때문이다.
소다가 요한이를 어떻게든 말려 보려고 했을때, 일어나서는 안될 일이 일어나 버렸다.
요한이가 누군지..소다와 어떤 관계에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민규가 뽀도시 일어나 소다를 지켜야 한다며 뒤에서 끌어 안은 것이다.
그 장면을 본 요한이의 얼굴에 다시 한번 경련이 일어났다.
그리고 몇초후 들린'퍽 하는 소리와 동시에 민규는 또다시 저만큼 날아갔다.
주위는 다시 난장판이 되었고 그 분위기를 침묵으로 잠재운 것은 요한이의 몇마디 되지 않는 말이었다.
-내.꺼.에.손.대.지.마...죽.인.다...
침북과 동시에 이제는 모든 시선이 나에게 쏠리는게 느껴졌다.
남 들 시선이 이렇게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는 난생 처음이었다. 내가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이고 있을때, 약간의 고통을 동반한 강한 충겨과 함께 쿨 워터의 상쾌하고 시원한 향이 내 후각을 자극했다.
요한이가 나를 끌어 당겨 품안에 가둔것이다.
요한이의 표정은 여전히 살벌했고, 민규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살기가 가득했으며, 나에게도 여전히 몹시 화가 나 있다는게 온몸으로 발산했지만, 차갑게 변하면서 책임을 묻는 다른 아이들의 시선으로 부터 방패막이 되어주고 있었다.
-12-
요한이의 품에 안겨 있던 내가 친구들에게로 돌아섰다.
사정을 이야기 한 다음에 사과하고 싶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좋은 자리를 망쳐 버린것은 어짜피 내 책임이니까...
-저기...얘들아. 미안해. 얘가 이렇게 까지 화낼 줄 몰랐어. 이애가 바로 아까 말했던 내남편..이야.
내가 말을 듣고, 모든걸 알고 있었던 민아아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 민규를 제외한 모든 아이들이 얼어붙어 버렸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고, 드디어 한 아이가 그 적막감을 깨뜨리고 말을 꺼냈다.
-소다...너...정말,,,이었어? 결혼했다는거?
-으응.....아까도 이야기 했잖아. 내 남편 출장갔다고...
-하지만...니 뒤에 있는 사람은....나이가...?
다른 아이가 아직도 딱딱한 표정으로 아이들과 나를 노려보고 서 있는 요한이를 바라보며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19..고3!
난 전혀 별거 아니라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그와 동시에 아이들은 다시 한번 얼어붙었고, 요한이는 조금 풀린 듯 했다.
아무래도 내가 친구들에게 남편있다는 이야기를 했었다는 사실이 말은 않해도 무척 기뻤던 모양이다.
아이들이 하나 둘씩 정신을 차리면서 가게는 다시 소란스러워 지기 시작했다.
-유.소.다.! 이노무 기집애..그걸 우리한텐 감쪽 같이 속여?
-벼..별루..속인거 없는데..다만, 말을 안했을 뿐이지..^^;;
-니가 지금 잘했다는 거야?+_+^
-미안...잘못했다..ㅠ.ㅠ
-그나저나..소다 너..완전히 도둑 아니니? 니나이에 새 파란 영계라니..
-미안하다..ㅠ.ㅠ
-그.거.범.죄.야...
지금까지 조용했던 한 친구가 장난을 진담처럼 이야기 하자 일순간 침묵에 휩쓸었다.
그리곤 잠시후, 모두는 웃음을 터뜨렸고, 분위기는 처음보다 훨씬 더 화기애애 해졌다.
그러나 우리가 그렇게 웃고 있는 것도 얼마가지는 못했다.
-재수없어...초등학교 때부터 꼬리치고 다니더니..나이가 들어도 변한게 없네..고등학생 남자라..하긴 니가 남잘 좀 밝히니? 딱 니취향이긴 하다..아니, 니취향은 민규 아니었나? 웃겨..이젠 바지만 입으면 다 좋은가보지?
라는 약간 신경질 적인 목소리가 나를 향해 지독한 독설을 내뿜었고, 그나마 서서히 화가 풀려갔던 요한이가 급속도로 냉각 되어져 갔다.
요한이는 남녀노소 지위 국적을 막론하고 소다에게 지나치게 많은 호감을 가지거나 약간의 반감이라도 가지는 사람을 보면 한번도 그냥 넘어간 일이 없었다.
소다에게 심한 말을 내 뱉은 사람은 서지영 이라는 동창이었다.
그 아이는 초등학교 때부터 소다에게 지독하리 만치 열등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소다가 가지는건 무엇이든 가져야 했고 소다가 하는건 어떤일이 있어도 따라해야 했다. 하지만 문젠 항상 소다가 우월했다는 것이다.
성적이 나와도 소다 아래 지영이가 있었고 운동을 해도 항상 소다 팀이 이겼다.물론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은것도 소다였다.
그래서 항상 소다만 보면 트집을 잡았고, 소다에 대한 악담을 입에 달고 다녔던 것이다.
요한이는 서서히 손을 내리고 손에 잡히는 1000cc맥주컵을 집었다. 그리고 그것을 지영이 바로 옆에 있는 벽을 향해 집어 던져 버렸다.
벽에 부딪친 컵은 '쨍그랑!하는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깨져 버렸고, 그것의 파편이 지영이의 팔을 훑고 지나갔다.
지영이에게 한마디 할까 하고 생각하던 아이들은 방금 일어난 사태에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파편이 슭힌 지영이의 팔에서 약간의 피가 흘러 나오자 여자 아이들 중 몇몇은 소리를 질렀고, 남자들 조차도 하얗게 질렸을뿐, 감히 말리거나 지영이를 살펴주지 못했다.
가게안이 침묵에 휩싸였을때, 요한이의 섬뜻한 목소리가 울려왔다.
-사,과.해. 너 따위가 함부로 말할 사람 아니야...누나..아니! 소다한테 한번 더 그딴식으로 나오면 평생 그 낯짝 못들고 다니게 만들어 준다...
-요,요한아.....
난 약간의 감동과 두려움 섞인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요한이를 불렀다.
그러나 너무 화가난 탓인지, 일부러 못들은 척 하는건지 요한이는 내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자존심 강한 지영이가 계속해서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사과 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요한이는 다시한번 주위에 있는 컵을 집어 들었다.
아까꺼보단 훨씬 작은 유리컵 이었지만 저것에 정면으로 맞는다면 꾀나 위험할 것이 틀림 없었다.
요한이가 그것을 집어 들기만 하고 던지지 않은체, 잠시 지체하자 아이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설마하니 요한이가 정말로 그걸 던질까? 하는 확신에서 였다.
하지만 요한이의 그런 태도에도 불구하고 더욱더 새파랗게 혹은 새하얗게 질려 버린 세 사람이 있었다.
바로,소다와 민아..그리고 유다였다. 그들 셋은 요한이에 대해서 너무나 잘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확실히 아는건.. 요한이가 저걸 던지기로 마음 먹었다면, 아무 거리낌 없이 던져 버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요한이는 소다가 관련된 일이라면 사고 능력을 잃는다.한마디로 이성을 잃는다는 말이다.
그 증거로 소다에게 찝적 댔던 치한이나 건달들을 입원시키기 위해 요한이의 아버지는 대형 병원을 따로 지어야 했던것이다.
소다가 매번 요한이를 말렸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병원 대신에 화장터나 공동묘지가 생겼을 것이다.
이렇듯이 소다는 요한이의 모든 행위와 사고의 기준에 있었다.
-시..싫어...내가 왜 저따위년 한테 사과를..니가 뭔데..고작해야 고등학생 같은데..거,,건방...
그때, 잔득 겁에질려 한 옥타브 올라간 앙칼진 지영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바보!!지가 지금 어떤 상황인지 모르는 거야?'
나는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 가는것 같았다. 민아와 유다의 표정을 보아하니 나보다 더 낳을게 없어 보였다.
-저.따.위.년?...........
다시 반문하는 요한이의 목소리를 들은 난 다시한번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대로 두면 요한이 큰일 낸다...여자라고 봐주고 할 놈이 아니야..'
내가 겁에 질려 있을때, 컵을 든 요한이의 손이 올라간게 보였다.
나는 반사적으로 지영이 앞으로 뛰어들어 갔고, 민아와 유다는 요한이에게 매달렸다.
그러나 민아와 유다가 달려들었을 때는 컵이 이미 요한이의 수중에서 떠나간 상태였다.
난 순간 머리에 부딪치는 둔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얼굴에 미적지근한 무엇인가가 흐르는걸 느꼈다.
점점 의식이 희미해져 갔고 난 무의식적으로 요한이가 있는 곳을 쳐다 보았다.
그곳에있는 민아가 입을 크게 벌리고 무엇인가 말하고 있었지만 들리지 않았다. 유다가 핸드폰에 대고 소리를 지르는것 같았지만, 그 소리 역시 들리지 않았다.
요한이가 넋이 나가 있는 모습이 보였고 난 그런 요한이가 안스러워 얼굴에 미소를 지으려고 노력한채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펌] 내남편은 고등학교 1진 짱 - 11,12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