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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빛나는 사랑
☆카라☆
Date : 2002-09-23 12:30:38 | hit : 644
'그대를 위해서 이 세상을 잃는 한이 있어도 이 세상을 위해서 그대를 잃고 싶지는 않아요... 내가 그이를 볼 수 있는 마지막이었다...'
[1]
왜 때로는 내가 기독교인 이라고 우기면서도 운명을 믿는 것일까? 아니, 믿는다기 보단 '혹시'하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일까?'우리 결혼할 꺼지?'하는 말을 들었을 땐 정말 심각한 관계 갔더니 나중에 고등학생이란 걸 알게 되면 만난지 얼마 안된 사이란 걸 알게 되면 황당해 하고, 비웃음으로 넘기려고만 하는 것일까? 우리도 처음엔 그랬다.. 전화로,
"내가 지금 결혼하자면... 너 날 따라와 줄 수 있는거지?"
"물론이지. 근데 우리 그럼 결혼하는거야?"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래 줄 수 있는거지?"
잠시 망설이고 있다는 걸 느꼈다. 고 3, 한참 전쟁을 치루고 있어야 할 우리 나이인데 결혼이라니... 내가 그녀였었더라도 참 당황했을 것이다. 난 알고 있었다. 모든 영화, 소설, 순정 만화...물론 해피 엔딩만이 사랑의 승리를 말한다는 것을... 잠시 후,
"오빠, 갑자기 무슨 일 있는거야?"
오빠, 같은 학년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학교를 일찍 들어온 탓에 날 오빠라고 부른다.요즘 젊은 남녀들 (그것도 아주 새파란 고딩들)이 한 두 살 차이 나이에 무슨 거리감이 있겠냐 만은.... 물론 같은 학년끼리... 요즘 아이들과 달랐다. 난 날 오빠라고 부르는 그녀가 처음엔 쉬웠지만, 같은 학년 이란 걸 알게 된 후로 점점 부담스러워 지고 있었다. 하지만 요즘엔 익숙해 진 탓인지... 듣기 괜찮다... 나도 대답했다...
"흠, 무슨 일이 있기는... 그래, 그럼 잘 자라..."
"응, 오빠도... 잘 자..."
"그래..."
[2]
난 그녀가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얼마 전에서야 알았다. 단지 만난지 두 달밖에 되지 않았는데... 이렇게 금방 이별이라니... 너무나도 가슴이 메였다...아주 빨리 이루워진 사랑이래서 일까? 그녀의 사랑을 빨리 배운 만큼이나 이별의 아픔을 얻는다는 것이 너무 빠르고 고통스럽게 다가올 것만 같았다. 아니, 벌써부터 아파오는 것 같았다. 다만 실감하지 않았다는 것 뿐... '왜 말하지 않았니?' 이게 아니야... '요즘 기침, 자주 하더라?' 이것 두 아니야... '너 뭐 야? 아프다는 거 속이고 여태껏 날 만난거야?' 이건 정말 아니야... 뭐라 그녀에게 말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그녀의 전화를 받아야 한다는 것 역시 망설여졌다. 알면서 모르는 척 한다는 것이...그것도 기쁜 일도 아니고 슬픈 일이라는 걸 내가 아는데...
'치징 칭~ 칭~ 치지지 칭~' 흥겨운 우리가락의 내 핸드폰 소리... 한번 울릴 땐 망설였다... '치지지 칭~ 칭~ 치지지 칭~' 요란한 내 핸드폰 소리를 들으며 눈물을 머금고 마음을 가다듬고,
"여보세요?"
"오빠, 나... 왜 오늘 한번도 전화 안했어?"
"응, 나 오늘 시력 1년에 한번 검진 받으러 가는 날이었거든... 거기가 좀 멀어..."
"응, 그랬구나... 그래서 핸드폰 꺼 놓은거야?"
"응, 그래... 넌..."
여기서 딱 말이 멈추었다... 어떤 식으로 말을 꺼낼까?
"넌... 밥 먹었니?"
그냥 이렇게 넘겼다.
"응, 그럼 먹었지..."
'아, 그게 아닌데...'하면서도 이렇게 말 못하고 말았다.
[3]
우연치 않게... 토요일 오후, 날 데리고 자기가 다니는 병원에 가는 모양이다. 이렇고 저렇고 한 모 대학병원이었다.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지금 왜 여기에 온거지?"
"응, 나 오늘 정기 검진받는 날이거든..."
"근데 왜 날 데리고 온거야..."
오늘 그녀는 조금 슬픈 눈빚을 하고 있었다...
"그냥 오빠가 알아야 할 것이 있어서..."
"그게 뭔데?"
검사 이것저것 많이 했나 보다... 시간이 꽤 걸린 것 같다. '철컥' 뚜벅뚜벅 평소처럼 걸어 나와 웃는 얼굴로 반겨 주었다. 내가 자기 아픈 거 다 알고 있는데...
이게 아니였다. 또 그냥 괜찮다고 말하면 화를 낼 참이었는데...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 너무 밝게 웃는 그녀의 미소에 또 약해지고 만 것이다... 그리곤 다시 병원 앞에 지하철을 타고 헤어졌다.
[4]
말 없이 그녀가 요양원에 들어간단 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래... 넌 결국 이렇게 말 없이 떠나야만 하는구나...' 내가 그녀의 심정을 모두 이해한 것. 마냥... 그래, 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먼저 연락을 끊기로 마음을 굳히고는... 이틀동안이나 핸드폰을 받지 않았다. 삼일째 아침, 그 날 역시 토요일이었다... '충격! 한 고3 신모양, 미소녀의 장기기증' 헤드라인 그대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이젠 모두가 알게 되어 버렸다. 그녀도 내가 이 신문을 보지 않으리라고는 믿지 않았을 테지만... 그래도 이 사실을 모르고 있던 모두에겐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그 날, 하루종일 내 친구들과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친구들에게서 수많은 전화만 빗발쳐 댔다...
"너 이 사실 알고 있었던 거야?"
"뭐야... 사실이야?"
그럴 때는 내가 대신 변호한다고 해도...
"뭐, 그 딴게 다 있냐? 자기가 뻔히 그 딴 병을 가지고 있으면서 속이고 널 만나?"
"죽어도 사랑하고 죽겠다는 거지, 뭐... 넌 알았냐?"
위로는 못할망정... 정말 싫었다. 물론 내가 여자친구 있다는 사실을 질투하는 몇 몇의 질문이었다. 그녀는 오늘 연락이 없었다...
[5]
오월 열이튿날... 내가 교회를 가는 그 날... 12시넘 짓, 예배가 끝난 후 난 전화를 받았다. 물론 그녀에게 서였다. 하지만 목소리는 그녀가 아니였다. '이제 우린 이 소녀의 마지막 유언을 들어주려 합니다.'
-그녀는 이미 3개월 전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었습니다.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달여 간을 아무 것도 모르는 듯, 그렇게 우리에 곁에서 지내주었습니다... 혼자 절망에 빠져있을 때, 유모군, 학생을 만났다는 군요... 눈을 감기 3주전, 이런 말을 하더군요... 눈도 이식이 가능하냐 구요... 우린 가능하다고 했죠.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무턱대고 장기 기증을 하겠다 하더군요. 자기 가진 모든 것을... 이미 많이 망가져 있는 몸이지만 내 몸의 한 부분이라도 필요로 하는 이들을 위해 장기 기증을 하겠다 구요. 단, 눈만은 건들지 말아 달라고 말했습니다...-
내가 전화 내용을 들은 건 여기까지다.
[6]
병원에 도착했다. 막 장기기증을 위해 수술에 들어가기 직전이었다. 이미 차갑고 내게 익숙해진 그녀의 시체가 내 앞에 뉘어 있었다. 눈물보다 앞선 건 그녀가 내게 남긴 편지였다.
-오빠, 알고 있으면서도... 왜 말 먼저 꺼내지 않았냐? 바보같아... 정말... 이게 뭐 이리 대단한 일이라고...오빠는 젊잖아... 나보다 더 괜찮은 킹카 잡아서 남은 고3의 나날들을 멋진 추억으로 장식하라고... 눈물을 보이지 않기로 한 내 자신과의 약속은 지켰는데, 오빠와 결혼해 주겠단 약속은 지키지 못하겠다. 그리고 오빠, 오빠, 그렇게 눈이 위험하면서... 그것도 나한테 말 하지 않았으니깐 서로 용서하기. 난 이제 이 눈, 필요없어. 오빠는 내 눈이 필요할 꺼야. 아니, 난 오빠와 결혼하는 것 보다 더 행복해. 내 눈으로 오빠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을 볼 수 있잖아... 아니, 내가 그들을 살아서 지켜보는 것만큼 행복할 수 있잖아. 고마워... 지금 울고 있을 꺼란 거 알아. 아니, 날 사랑하지 않았다면 울고 있지 않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하지만... 난 오빠를 사랑했는데... -
이런 식으로 편지는 끝이 나고 말았다. 이미 난 편지를 받을 때부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내 눈은 아주 조금씩 강막이 벗 껴져 나가는 아주 보기 드문 병이었다. 나 역시 언제 그녀를 보지 못하게 될까 두려웠는데...내 눈 앞에서 보기 좋게 잠들어 있었다... 아주 행복하게... 하지만 어떤 여운이 남은 듯...
[7]
이젠 그녀를 지우기로 한다... 그녀가 내게 남겨준 세상을 바라보는 아름다운 두 눈이 있지 않은가... 내 안에 그녀가 살아있다. 우린 짧은 사랑이지만 진실한 사랑이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실은... 지금도 느끼고 있다... 난 이제 대학에 들어왔고... 한 카페에 갔다. 고 3때, 그녀와 함께 소개팅을 받았던 그 카페... 그녀의 글씨가 있었다. 날짜는 그녀가 눈 감기 이일 전으로 되어 있었다...
'그대를 위해서 이 세상을 잃는 한이 있어도 이 세상을 위해서 그대를 잃고 싶지는 않아요...'
잉크는 번져 있었다... 그게 내가 그녀를 사랑할 수 있는 마지막이었다... 그래도 때로는 하늘이 주신 천사, 그녀가 운명이라 믿고 싶네요..
조용히 빛나는 사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