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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통로 뚫기]
암흑기사데몬
Date : 2003-02-13 18:17:16 | hit : 1251
한 미국 부인이 호화 유람선을 타고 떠났다가 뜻하지 않게 터키의 감옥 신세를 진 적이 있다. 'Never Pass This Way Again'에 기록된 진 르페르(Gene Lepere)의 시련은 문화적 배경이 다른 데서 생길 수 있는 불행한 경우였다. 즉 말하는 스타일과 생각을 전하는 스타일이 서로 다른 데서 연유한 것이었다. 또 르페르씨의 경험은 갈등을 피하려다가, 쉽게 말해 정중하게 거절하려다가도 화를 부를 수 있다는 예를 극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르페르는 터키의 고대문명을 잠시 구경하겠다는 의도로 유람선을 내렸다. 고대유물이 폐허 그대로 남아 있는 한 유적지에서 일행을 먼저 보내고 뒤에 남았다. 한참 폐허에 정신이 팔려 있는데 모조기념품을 파는 한 남자가 길을 가로막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그녀의 손에는 이미 그 돌상이 들려 있는 것이 아닌가. 그녀가 아주 공손하게 그런 물건을 사고픈 생각이 없다는 뜻을 전했으나 그 상인이 쉽게 그 물건을 받으려 하지 않았다. 그 상인은 그 물건을 받기는커녕 다른 물건을 하나 더 안겼다.
이 남자 상인이 그 물건을 받을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가 그 순간 할 수 있다고 생각한 유일한 길은 그 물건값을 도저히 팔 수 없을 정도로 깎는 방법이었다. 그녀는 가격을 반으로 뚝 잘랐다. 그리고 그 상인이 팔지 못하겠다고 나올 것으로 기대했다. 그런데 의외로 그 상인은 값을 깎아 주겠다고 말했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녀도 그 물건을 사게 되었다.
그러나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녀가 물건값을 지불하는 순간 그 상인이 다른 물건을 하나 더 건네주었던 것이다. 다시 한 번 그녀가 더 이상 사지 않겠다고 고집했지만 그는 한사코 강매하는 것이 아닌가. 다른 대안이 없다고 판단한 그녀는 값을 치르고 화가 나서 그 유적지를 빠져 나왔다. 르페르가 유람선에 다시 오르고자 할 때 세관원들이 구입한 물건들을 일일이 체크했다. 여기에서 그녀는 터키의 국보를 외국으로 밀반출하려던 혐의로 체포되어 수감되었다. 바로 세 번째 산 물건이 진품이었던 것이었다.
그리스에서 살면서 그들의 협상 방법을 관찰해 본 결과, 그 상인에게는 가격만을 걸거나 물건을 사지 않겠다고 말하는 그 자체가 그 상인에게는 가격만 적당하면 살 수 있다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음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녀가 진정으로 그 물건을 살 생각이 없었더라면 그 상인에게 말도 걸지 말았어야 했던 것이다. 그녀는 누가 뭐라고 해도 제 갈 길을 가고 그 상인과는 눈길도 맞추지 않아야 했다. 또 그 상인이 아무리 고집을 부려도 그 돌상을 받지 말아야 했던 것이다. 그녀가 돌상을 받아들 때마다 그 상인은 그녀가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판단, 계속 흥정을 벌이겠다는 용기를 얻는다. 결국 그 상인이 물건을 팔겠다고 열을 올리는 것은 상대방의 흥정기술에 대한 나름대로의 대응이었다. 그러나 그녀로서는 상인을 쳐다보지도 않거나 말을 건네지 않는다는 지, 마지막 수단으로 돌상을 바닥에 놓는 일 따위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방법이었던 것이다.
르페르는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커뮤니케이션의 불통에 엄청난 대가를 치른 셈이다. 비록 남녀 문화적 차이에서 생기는 커뮤니케이션의 불통이 이처럼 엄청난 결과를 낳지는 않는다 해도 오해가 일어나는 과정은 이와 아주 유사하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남녀간의 오해가 더 위험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남녀간의 대화가 우리 생활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데도 우리 각자가 그런 대화에 필요한 준비를 갖추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는 처음부터 많은 차이점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즉 문화나 관습 등이 달라 대화에서도 서로 상반되는 점도 많을 것으로 미리 예상하게 된다. 그러나 가족이나 친구, 직장동료, 연인들에게까지도 우리와 다른 점이 많을 것으로 생각하기는 어렵다. 같은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고, 같은 언어를 쓰는 만큼 세계관이나 언어이해가 다 같을 것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왜 일이 더 악화되나
진 르페르의 경혐을 통해서 상대방의 행동에 대한 대응이 잘못되면 정도가 훨씬 심한 반응을 부를 수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치 처음에는 하나의 점에서 시작되었지만 계속 악화일로를 치닫다가 나중에는 합일점을 찾기가 불가능한 지경에 이른다. 학계에서는 이런 현상을 '나선형 불화'라고 부른다. 르페르가 상인의 상술에 불쾌한 반응을 보였지만 이는 오히려 상인이 더욱 적극적으로 나오도록 유도한 결과를 낳았다. 예를 들면 그녀가 사지 않겠다는 뜻으로 가격을 대폭 낮추었지만 그 상인은 엉뚱하게도 관심표명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그런 상황에서 빨리 도망치려 한 그녀의 노력이 오히려 올가미를 부른 꼴이 되고 말았다.
이런 현상은 성격이 아주 민감한 남녀간에서 자주 일어난다. 쉽게 풀어보자.
자유를 잃지 않겠다고 고집 하는 남자들은 자신을 통제하려 드는 신호를 받는 순간 몸을 움츠리게 된다. 그러나 이런 남자의 태도가 다른 사람과 멀어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여자들에게는 또 다른 경고신호로 작용한다. 이런 상황에서 이 여자는 남자와 가까워지려 애 쓸 것이고 그에 따라 이 남자의 두려움 또한 커지게 된다. 이런 악순환이 계속되면 나중에는 이 남자와 여자 사이에 걷잡을 수 없는 골이 생기고 만다. 그러므로 서로를 충분히 이해하고 그 말 뒤에 숨어 있는 동기까지 파악하는 길이 이 같은 파괴적인 악순환의 고리를 타파하는 첩경이라고 할 수 있다.
불평등은 가정에서 먼저 시작된다
남녀 성의 차이가 다른 문화적인 갈등 요소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이유는 남녀간의 갈등이 주로 가정에서 일어난다는 점 때문이다. 우리는 외국문화를 처음 접하거나 외국인과 대화를 나누게 되면 오해도 쉽게 일어날 수 있다는 각오를 한다. 바로 이 점이 외국여행에서 스릴을 느끼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하다. 그러나 가정에서만은 이런 위험이 없이 안전하기를 원한다. 즉 각자가 평등하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사회학자인 어빙 고프먼은 인종에 따른 불평등이 같은 인종적 배경을 지닌 사람들간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가 바깥세계로부터 차단되어 생활하는 가정에서도 남녀 성차이에 따른 불평등은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가장 친한 관계에서 일어나는 이런 차별을 없애려 노력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런 차별 자체를 인식조차 못하는 경우가 많다.
바로 이런 불평등 때문에 아주 화목하여야 할 가정에서도 지위의 고하가 엄연히 생기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모두가 남녀 불평등을 창조해 나가고 있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
의식화된 패턴
여자와 남자는 서로 사랑을 하더라도 대등한 입장에서 하는 것이 아니다. 남녀가 서로 껴안고 길을 거닐 때는 언제나 남자의 팔이 여자의 어깨를 감고 있고 여자의 팔은 남자의 허리에 걸린다. 둘 사이가 더 다정한 사이라면 남자의 손이 주머니에 들어 있고 여자의 팔이 남자의 팔을 감고 있을 것이다.
이런 모양은 평등한 입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만일 여자가 남자의 어깨에 손을 얹고 남자가 여자의 허리를 감고 거리를 걷는 쌍이 있다면 지나가는 행인들이 모두 이상한 듯이 쳐다보게 될 것이다. 여자가 손을 주머니에 넣고 남자가 여자의 팔에 매달려 가거나 여자가 남자의 어깨에 팔을 걸치고 가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는 십중팔구 모자지간 임에 틀림없다.
일부 사람들은 남자들이 여자의 어깨에 손을 얹는 것에 대해 대개 남자들이 여자들에 비해 신장이 크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여자들이 남자들의 어깨에 팔을 걸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남자들이 여자의 어깨에 팔을 얹는 것이 오히려 편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자의 키가 더 큰 쌍의 경우에도 여자가 남자의 어깨에 팔을 올릴 수 없을 정도로 작을 때에는 그 역의 현상이 생기는 것이 아니고 손을 잡는다든지 다른 대안을 찾게 될 것이다.
더구나 우리 사회는 남자들이 여자보다 더 커야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데 이도 남자를 보호자, 즉 높은 지위에 올려놓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남자와 여자 관계에 존재하는 이런 불균형은 이들이 일상생활에서 취하게 되는 자세에서도 두드러진다. 일상생활에서 가장 편안해야 하는 시간에도 이런 성차이의 문제는 상존한다. 남자와 여자가 침대에 누울 때 보통 남자는 등을 바닥에 대고 똑바로 눕는 반면 여자들은 모로 누워 남편 품을 파고드는 자세를 취한다. 여자의 머리는 남자의 어깨에 올라가게 되고 남자의 팔이 자연스럽게 여자의 목을 안게 된다. 거의 매일 남자와 여자들은 자동적으로 어린 자세를 취한다. 심지어 이들은 이런 자세를 유지해야만 편안하다는 신념까지 갖고 있다. 그 이유는 이런 자세에 익숙해 있기도 하지만 살아오면서 늘 이런 모습을 접했기 때문에 이런 자세를 아주 정상적인 것으로 생각하게 된 데에 있다. 그러나 이런 자세에 익숙해 있다고 해서 계속 고집하다 보면 불균형적인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하는 부작용을 초래한다. 즉 남자는 튼튼하고, 강인하고, 보호 본능적인 반면 여자는 균형을 쉽게 잃고, 중심이 없으며, 보호를 받아야 하는 존재로 각인된다.
이처럼 의식화된 패턴이 얼마나 엄격하게 일상생활을 지배하는지는 영화 'The Accidental Tourist'애 잘 나타나 있다. 주인공인 매이컨은 지친 몸으로, 자기에게 애정을 표시하고 있는 뮤리얼의 집에 나타난다. 매이컨은 뮤리얼에게 자기 아들의 사망을 이야기하면서 아픔을 토해낸 뒤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는 것까지 고백한다. 이런 고백을 받은 뮤리얼이 매이컨의 고통을 달래 주기 위해 그를 침대로 끌고 간다. 침대에서 메이컨은 등을 바닥에 대고 똑바로 누워서 팔로 뮤리얼을 감았다. 또 뮤리얼은 그를 달랜다는 것이 오히려 그에게 기대려 들었던 것이다. 이 장면을 연출하면서 감독은 남자가 보호자가 되어야 한다는 관념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음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았다면 극적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서는 여자가 남자를 돌보는 것으로 해야 했기 때문이다.
남녀 성은 영원히 떨쳐버릴 수 없는 범주임에 틀림없다. 고프먼이 말했듯이 그것은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있는 인간의 특징인지 모른다. 우리가 자연스럽게 행동한다고 믿고 있는 가운데에도 남성 여성의 구분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무엇이 자연스러운가에 대한 감각은 남녀에 따라 다르다. 어쨌든 우리가 남자와 여자로 생각하는 모든 것이 불평등한 구도에 근거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고프먼의 주장에 따르면 남녀 성의 관계는 부모-자녀 콤플레스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좋은 남자가 되거나 좋은 여자가 된다는 것이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를 통해 유추할 수 있다는 말이다. 고프먼은 남자와 여자의 관계는 성인과 어린이의 관계와 같다고 주장한다. 즉 남자들이 문을 지켜야 하고 행복을 안겨 주어야 하며, 무거운 물건을 여자대신 들어주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여자들은 어린이의 특권을 누리는 한편 자기 인생에 대한 책임을 어느 정도 포기해야 한다. 어린이들의 활동을 주위 사람들이 중지시킬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만큼 여자들의 시간과 영역은 늘 침범이 가능한 것으로 인식된다. 보호받는다는 특권과 함께 권리의 침해를 받고, 존경받을 기회를 잃고, 완전한 객체로서 대접받지 못하는 불이익을 당해야 한다. 누군가의 보호자가 된다는 것은 그 사람을 능력 있고, 존경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으로 만든다. 반면 보호를 받는다는 사실은 보호를 받는 사람을 무능력하고, 아무렇게나 다루어도 괜찮은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다.
대화에 나타나는 불평등: "나는 당신을 위해서 그 일을 했을 뿐인데"
남녀 부부들과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남자들이 대화도중 여자의 보호자를 자처하는 것을 발견하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최근에 있었던 한 부부의 싸움을 예로 들어보자. 남편이 이상하게 한 손만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이 알아채고는 왜 그런지를 남편에게 따졌다. 그녀는 언제부터 팔이 아파 못 쓰게 되었는지를 물었다. 남편의 대답은 "한 몇 주일 되었다."는 것이었다. 이 같은 대답에 부인의 반응은 남편도 놀랄 정도의 노여움을 담고 있었다. "그렇게 계속 해보세요. 나를 낯선 사람 취급하다니!"
이 부인은 부부 사이라면 마음에 든 모든 것을 털어놓아야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남편이 팔을 다친 것도 물론 이야기를 꼭 해야 할 사항에 든다. 그녀의 남편은 팔을 다친 사실을 부인에게 알리지 않음으로써 부인을 멀어지게 하는 결과를 낳고 있는 것이다. 즉 침묵을 지킴으로써 부인과의 관계를 소원하게 한 경우라 하겠다. 나는 이 부인의 관점을 본능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남편이 왜 그런 태도를 취했는지는 금방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는 자기 말에 대해 이렇게 해석했다. "남자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여자들을 보호하는 것을 배우지 않느냐." 이 말에 나도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내가 나서서 부인에게 팔을 다쳤다는 사실을 이야기하지 않는 것과 여자를 보호하는 것과는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물었다. 이에 그 남편이 "나는 그녀를 위해서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라고 대답했다. "별로 심한 것도 아닌데 괜히 팔을 다쳤다고 이야기해서 마누라를 걱정하게 할 필요가 있습니까?"
이 남자가 부인에게 말을 하고 안하고를 결정하는 데는 그녀의 보호자라는 의식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이를 다시 표현하면 자기가 부인보다 우월하다는 의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는 부인보다 튼튼하고, 또 자기가 하는 말 한마디에 부인이 고통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남자로서는 중요한 이야기를 하지 않음으로써 둘 사이의 관계를 멀어지게 한다는 부인의 생각이 선뜻 납득이 되지 않는 것이다. 남자에게는 친교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이 부인의 관점에서는 남편에게 일어난 사실을 부인인 자신이 아는 것은 둘 사이에 필수조건이다. 그렇기 때문에 남편이 신상의 변화를 이야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곧바로 남편이 자기를 멀리하고 있다는 판단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같은 정보를 놓고도 이처럼 달리 해석한다는 것은 그만큼 이들의 선입견이 다르다는 뜻도 된다. 즉 이들은 각각 다른 주파수에 맞추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이 남편도 다쳤다는 사실을 부인에게 알릴 경우에 예상되는 간섭을 피한다는 점에서는 자신의 독립을 추구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가 부인에게 아픈 사실을 숨기게 된 동기를 이런 식으로 설명하지는 않았다. 그는 무엇보다도 부인, 즉 여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다음에 예로 드는 경우도 바로 이와 비슷하지만 남편의 행동에서는 약간 차이가 있다.
'미첼'이라는 여인은 남편인 '개리'가 자기가 원했던 것과는 약간 다른 대답을 한다고 불평이다.
미첼: 음악회가 몇 시에 시작하죠?
개리: 7시 30분까지 준비를 끝내면 되지.
미첼: 파티에는 몇 명이나 참석할까요?
개리: 걱정하지 마오. 음식은 충분할 거요.
미첼의 경우 남편이 필요한 정보를 혼자 독점해 둘의 관계에서 우위에 서려 한다는 판단을 하고는 당황해 한다. 그러나 남편의 설명은 부인이 묻는 질문의 핵심까지 파악하고 그에 맞는 대답을 해 부인이 쓸데없는 걱정을 하지 않도록 배려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둘 다 타당성이 있다. 이들이 대화를 통해서 불화를 느끼는 것도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남편이 보호자로 자처하려 한다는 점 때문이다. 남편의 경우 부인의 관심에 귀를 기울이는 자신을 보호자로 보고 있고 부인의 경우는 남편의 이러한 태도를 능력과 통제를 과시하려는 것으로 풀이한다.
다른 한 남자도 이와 유사한 대화문제로 상담을 요청해 왔다. 그러나 이번 경우에는 그 역할이 뒤바뀌었다. 묻는 질문을 나름대로 해석하고 이와 관련된 정보를 주는 쪽이 부인인 '밸러리'였다. 또 대화에 문제가 있다고 이의를 제기한 측이 남편인 '넷'이었다. 그들의 대화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넷 : 지금 떠날 거야?
밸러리: 잠이 오면 낮잠을 자도 돼요.
넷 : 다 끝나가?
밸러리: 지금 점심을 먹고 싶은 건가요?
밸러리는 남편의 불평을 듣고 앞에 예로 든 남편들과는 아주 판이한 변명을 했다. 그녀의 설명은 남편의 희망사항과 관심이 무엇인지를 미리 알고 그렇게 대답했다는 것이었다.
이 남자와 여자들은 같은 행동에 대해서도 서로 다르게 설명한다. 사실 이들은 같은 행동을 했으면서도 그 이유는 각각 다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남자들에게는 보호자가 되는 것이 중요하고 여자들에게는 상대방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
남자와 여자들이 유사한 행동을 하면서도 각각 다른 동기를 가질 수 있다는 말은 곧 각각 다른 동기를 가지고도 같은 행동을 할 수 있다는 말도 된다.
우리 모두는 지위상의 차이와 대등관계를 저울질해 가면서 각자의 독특한 방법으로 행동을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이들의 동기를 연속체의 양끝으로 본다면 남자와 여자는 서로 양 끝부분에만 매달리려 한다고 생각해도 좋다. 바로 이런 관점의 차이 때문에 남자와 여자들은 같은 장면을 보고도 서로 다르게 인지하며 각자의 동기를 오해하는 경우가 생긴다. 따라서 이런 차이점을 이해하면 서로간의 오해를 줄일 수 있고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이치에 맞는 것으로 보이게 된다.
수수께끼 풀이
한 남자가 글의 어린 시절 친구 중 반골기질이 대단히 강했던 '헨리'라는 친구를 만나고는 아주 당황한 빛을 감추지 못했다. 헨리하면 먼저 기회 있을 때마다 권위를 우습게 여기려고 애쓴 인물로 떠오르는 것이다. 그는 머리도 다른 사람이 하지 않은 방법으로 가꾸었고 옷도 희한하게 입었다. 또 학교 다닐 때는 엉뚱한 행동으로 선생들을 골려 주었으며 나중에는 자기 진로까지도 그런 식으로 결정했다. 그는 다른 학생이 다 가는 대학을 마다하고 미국을 떠났다. 그런 그가 몇 년의 세월이 지나서 아주 딴사람이 되어 돌아왔던 것이다. 그는 아주 전통주의자로 변했다. 예를 한 가지 들면 그는 모임이 있을 때마다 친구들에게 부인을 꼭 동반하도록 강요했다. 그가 설명하는 이유는 부인들은 남편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 가도록 운명 지워졌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의 정치관도 아주 보수적인 쪽으로 변했다.
우리는 젊었을 때 반골기질이 강했다가도 성인이 되어서는 권위주의자로 변하는 사람들을 주위에서 그리 어렵지 않게 접한다. 나도 한때는 경찰관들이 어렸을 적에는 아주 불량배였다는 이야기를 쉽게 하는 것을 보고는 놀라기도 했다. 연구보고서에서도 경찰관들 중에서 어린 시절을 이야기하라면 가출했다든지 법을 어겼다든지, 소위 현재의 직업과는 어울리지 않는 경험담을 털어놓고 있다. 이런 의문들도 이 세상을 계급사회 구조로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전혀 이상하게 들리지 않았다. '타고난 반골'일지라도 권위를 거부한다는 행위 자체가 각자 자신을 강화하고 종속적인 위치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이 나중에 나이가 들어 지배하는 입장에 서게 되고 인생에서 어느 정도 성공을 이루게 되면 거꾸로 권위를 강화하는 길이 자신을 확인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왜냐하면 이렇게 되면 계급구조가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또 한 가지 의문이 풀린다. 왜 내가 아버지와 닮은 점이 많은 반면 다른 점도 많은 것이라는 의문이 그것이다. 예를 들면 아버지는 나에게 독서를 사랑하는 것과 작문을 즐기는 것을 물려 주셨다. 그는 내가 어렸을 때 기회 있을 때마다 "요즘은 무슨 책을 읽고 있지?"라고 물으셨다. 그러나 나는 아버지에게 훌륭하다고 생각되는 책을 소개할 때마다 번번이 실망이었다. 아버지는 내가 권하는 책을 끝까지 읽은 적이 없었다. 늘 "너무 지루하다."든지 "전혀 아무 변화가 없어."라고 말씀하셨다. 아버지께서도 나로 하여금 자신이 즐기던 책을 끝까지 읽도록 만들지 못했다. 다른 대부분의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나의 아버지도 액션에 관심을 두셨다. 그런 까닭에 어머니께서 편찮으시다고 말하면 아버지는 실망의 빛을 보였다. 아버지는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느냐에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는 반면 나의 어머니는 동정을 받을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두 가지 방법
동정을 표시하거나 무엇을 하자고 제안하는 것도 다른 사람과의 관계 강화라는 동일목적을 달성하는 좋은 방법이 된다. 우리가 하는 모든 대화는 관계유지라는 인간 공통의 필요에 도움이 되면서 아울러 독립이라는 욕구를 이루는 데 도움이 된다. 남자와 여자가 친교에 대해 상반된 시각을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독립에 대해서도 상이한 시각을 보일 수 있다. 사람과의 관계를 기본적으로 지위고하로 보는 사람들은 독립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에 종속되기보다는 위에 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은 것도 또한 사실이다. 즉 다른 사람을 지배하지 않으면서도 독립을 유지하거나 다른 사람에 종속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 불평등한 관계를 바탕으로 한 독립이 아니라 평등한 관계에서의 독립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런 두 가지 관점이 바로 남자와 여자가 독립을 보는 시각이라고 이 분야의 전문가인 필립 블럼스타인과 페퍼 슈원츠는 주장하고 있다. 이들의 연구논문인 'American Couples'에 등장하는 한 남편은 자신이 독립을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기대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발상이 보호자로서의 입장을 적나라하게 표현한 것이며 이 사회에서는 바로 남자다움으로 통하는 것이다. 독립을 대하는 여성과 남성의 시각차이는 돈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에서도 잘 나타난다. 블럼스타인과 슈워츠는 남자에게 있어서 돈이란 바로 파워로 통하고 여자에게 있어서는 안정과 자결, 즉 의지하지 않아도 된다는 능력으로 통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비교를 더욱 쉽게 하기 위해 남녀 동성연애자 커플을 예로 들었다. 여자 동성연애자인 레스비언의 경우 상대방을 지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의존을 피하는 데 돈을 이용했다. 그러나 남자 동성연애자인 게이의 경우 수입이 높은 쪽이 그 상대방 보다 우위에 서는 양상을 보였다.
힘에는 책임이 따른다.
독립에 대한 서로 엇갈린 이해는 남자와 여자가 어릴 때부터 서로 다른 종류의 인기나 관계를 배우고 실천하는 데서 생긴다. 그리고 이런 세계관의 분명한 차이는 남녀 할 것 없이 누구에게나 고통으로 작용한다. 다른 사람보다 기술이 많고 지식수준이 높게 보이면서 대인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중압감은 소년이나 남자들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 소녀들과 여자들도 마찬가지로 갈등을 피하고 다른 사람들과 동등한 것으로 비치면서도 지위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 부담으로 작용한다.
여자들의 경우 대등한 관계를 지나치게 의식한 나머지 고통을 겪게 되는 수가 종종 있다. 예를 들면 다른 사람이 고통을 호소해 오면 그것에 걸맞은 자기의 고통을 고백해야 한다는 점을 꼽을 수 있겠다. 여자들은 누구나 친구들로부터 고통을 들으면 그에 어울리는 자기의 고통을 털어놓아야 한다고 거의 의무적으로 생각한다. 한 여자는 자기 친구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불평했다. "마리아는 나까지 자기의 노이로제와 같은 증상을 앓고 있는 것처럼 쉽게 단정한단 말이야. 말을 할 때 나도 자기가 겪고 있는 문제와 똑같은 문제를 갖고 있다는 것을 은연중에 풍겨. 나는 전혀 그런 문제를 가지고 있지 않은데도 말이야." '질'이라는 또 다른 여인도 이와 유사한 불만을 털어놓았다.
질의 불만은 친구인 '엘리자베스'가 무슨 말을 할 때 꼭 자기를 끼워 넣는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이런 문제를 안고 있어."라든가 "그것은 우리 둘의 문제야."라는 식으로 엘리자베스가 포괄적인 표현을 사용할 때는 질이 자기의 고민에 걸맞은 고민을 같이 호소해 오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생활에서 만약 질이 "그것은 나의 문제는 아니야."라고 대답하게 되면 엘리자베스는 배신감을 느끼고 질이 자기를 낮추어 보고 있다고 비난하게 된다. 질은 계속해서 "여자들 중에는 다른 사람들이 자기와 꼭 같이 되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이들은 다른 사람의 개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라고 불만스럽게 말했다.
만약 여자들이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언제나 만족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면 남자들도 친구들과의 사이에서 늘 행복만을 경험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많은 남자들이 여자들을 친구로 두는 것이 더 편하다고 고백해 온다. 이는 두말할 것 없이 같은 남자라도 대화를 하기가 어렵다는 말이 되겠다. 한 남자의 경우를 보자. 그는 다른 도시로 이사를 가서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남자 친구들 두 명 사귀는 데 2년이나 걸렸다고 전했다. 이 남자가 말하는 친구는 각자의 문제까지 말할 수 있고 서로 경쟁심을 느끼지 않는 사이를 말하는 것이었다. 남자들이 늘 강해야 하고 독립을 확보해야 한다는 말은 그만큼 자신에게 문제가 없어야 한다는 뜻이 된다. 어느 이혼 남의 고백을 들어보자. "나는 모든 사람이 자신이 안고 있는 문제를 다른 사람이 아는 것을 싫어한다고 생각한다..... 당신들도 당신의 문제는 늘 혼자 생각하고 남에게 알리지 않으려 들것이다."
많은 남자들이 나에게 특히 미국 남자들이 친구간의 대화를 곧잘 경쟁의 장으로 만든다고 귀뜸 했다. 한 영국 출신 남자를 보자. 이 남자는 옛날 영국에서는 그의 가장 친한 친구가 당연히 남자였다고 말했다. 그러던 것이 미국으로 이민 온 뒤로부터는 친한 친구 중에서 여자의 비중이 높아 졌다는 것이다. 그는 고향을 찾아서 옛날 친구와 많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는 이들 친구들과 만나면 서로가 많은 것을 양보한다고 설명했다. "우리는 언제나 친구들간에서 지배하거나 높은 자리에 서려고 하지 않았다." 다른 미국 남성도 이와 유사한 견해를 보였다. 그는 경험을 비추어 볼 때 유럽 출신들과 친구하기가 쉽고 대화가 쉽게 풀린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남자들과 대화를 한다는 것은 전쟁에 나가는 것만큼이나 정신무장을 필요로 한다."고 설명했다.
이 세상의 많은 남자와 여자 중에는 어떤 면에서 볼 때 반대 성(性)에 더 가까운 사람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이는 각 개인의 행동 패턴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 즉 성장지역, 인종적 배경, 종교적 문화적 배경, 출신 계층, 개인경험, 유전적인 요소 등이 복잡한 만큼 지극히 자연스런 현상이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각 개인의 인생이 남들과 구분되고 개성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개성의 차이를 인식하고 이해하는 것은 자신에 대한 이해를 위한 출발점이 될 뿐 아니라 유연성까지 갖출 수 있는 시발점이 된다. 이 유연성을 다시 설명하면 지금까지 해온 대로 일을 처리해서 성공적인 결과를 얻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면 다른 방법을 동원할 수 있다는 자유가 된다.
여자든 남자든 상대방의 스타일을 배우게 되면 많은 이점을 누릴 수 있다. 많은 여성들이 남자의 스타일을 통해 갈등을 수용하고 서로 다룰 수 있다는 점을 받아들이면 갈등이 드러나도 친교에 위험이 되지 않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남자들도 여자들로부터 상호의존을 배우면 그런 현상을 결코 자유의 침해로 생각지는 않게 될 것이다.
충돌을 피함으로써 친교를 유지하겠다는 여자들의 성향을 감안하면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파트너와 떨어져 있기를 희망한다는 주장에 수긍이 간다. 나는 블럼스타인과 슈워츠의 이런 주장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여자들이 남편이 없는 사이에 친구들과 나누어야 할 커뮤니케이션이 별도로 있다는 점이다. 남편이 같이 자리를 할 경우 친구들과의 이런 대화는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파트너와 자리를 같이한다는 것은 남자들보다 여자들에게 더 많은 부담이 되는 것이다.
만일 자동적으로 자신을 적응, 변화시켜 나가는 것이 긴장을 요하는 작업이라면 상대방의 의지에 자동적으로 반항하는 것 또한 긴장을 요하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가장 바람직한 스타일은 유연성을 갖춘 것이 된다. 또 가장 자유로운 사람은 상황이 변해도 계속 한 가지 전략만을 만족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때그때 상황을 보아가면서 많은 전략 중에서 이것저것 선택해 나가는 사람이다. 각자가 거의 자동적으로 하게 되는 행동에는 본래 좋지 못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만약 우리들이 대부분의 일상사를 자동적으로 하지 않는다면 일상생활을 해 나가는 데도 엄청난 집중력과 에너지를 필요로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대화 스타일과 그 효과 정도만 파악해도 거의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충동을 억제하고, 본래의 대화 스타일이 제대로 효력을 발휘하지 못할 때는 스타일을 변화시킬 수 있게 된다.
여러 가지 여건에 따라서
각자의 대화 스타일을 철저히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특정한 표현이나 대화 습관이 진정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물어 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면 나는 언제나 어느 말이라도 한 가지 의미만 가지는 경우는 결코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남이 말을 하는 도중에 말을 자르는 습관을 두고도 생각해 보자. 이도 여러 가지 의미를 띨 뿐 아니라 다양한 결과를 낳는다. 먼저 듣는 사람이 말을 하는 사람의 입장을 지지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 화제를 바꾸자는 압력도 될 수 있다. 화제를 바꾸자는 뜻 일 때도 광범위하게 해석된다. 그 말에 관심이 없다는 뜻도 되고 대화를 지배하려는 의도로도 받아들일 수 있다. 간혹 상대방의 경험과 같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기 위해 말을 자르는 경우도 있는데 이 때도 그 동기에 있어서는 실로 다양하게 해석된다. 같은 경험을 했다는 것을 강조해서 유대를 강화하려는 노력으로도 해석될 수 있고 경쟁의 입장에서 자신이 더 중요한 인물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 그러는 것이라고 여겨질 수도 있다.
리 크롱크(Lee Cronk)는 다양한 문화에서 선물을 주는 의미를 서로 비교 분석해 같은 행동이라도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크롱크는 먼저 아프리카의 예를 들었다. "아프리카의 어느 부족에서는 선물은 내가 값진 것을 갖게 되면 그것을 당신에게 주겠다는 의미가 된다. 후에, 아주 먼 훗날에 당신도 좋은 것을 가지게 되면 그것을 나에게 주라. 그러면 또다시 내가 좋은 물건을 가지게 될 때 당신에게 주겠다는 식이다." 어떤 식으로 상대방이 준 선물의 값어치에 맞는 선물을 구하게 되는가, 즉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 친구가 창을 선물할 경우 당신이 구슬로 보답하고 하지 않았다.
그는 물건을 교환하는 것이 아니고 인정을 나누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것이든 훌륭하게 받아들여진다고 설명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뉴기니아에서는 '모카'라고 불리는 선물 교환 풍습이 있는데 이는 순전히 위엄을 얻고 라이벌을 모독하기 위해 쓰이는 것이었다. 지난 '70년대에는 이런 풍습에 얽힌 일화가 참으로 많았다. 그 중의 하나가 어떤 사람이 돼지 수백 마리, 아마소, 야생조류, 트럭 한 대, 오토바이 한 대와 수천 달러를 현금으로 선물한 경우이다. 당시 이만한 선물을 보냈던 사람은 선물을 받게 된 사람에게 "내가 이겼지. 나는 너에게 엄청난 선물을 줌으로써 완전히 너를 다운시킨 셈이야."라고 노골적으로 말했다.
이 두 문화에서도 선물을 준다는 같은 행위가 각각 다른 목적으로 쓰이고 있다. 아프리카 어느 부족의 경우는 협동적인 의미가 강했고 뉴기니아의 경우는 경쟁적인 요소가 강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 한쪽은 균형감각을 중요시하고 다른 한쪽은 상하관계를 중요시한다고 볼 수 있다.
이렇듯 말이나 행동이 갖가지 동기와 의도에서 나오기 때문에 이런 말이나 행동을 해석하는 데 우리의 직관을 따르는 행위는 위험천만한 일이다. 이 같은 사실을 인지하는 일이 남녀의 대화나 관계를 개선시키는 데 열쇠가 된다.
다른 사람이 하는 말에 대한 직관적인 반응이 부정적인 쪽일 때 더욱 그러하다. 그대신 우리는 사물을 다른 사람의 입장과 시간에서 보도록 노력해야 한다. 남자와 여자들이 세계를 보는 시각에서나 대화 방법에서 상이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부터 남녀관계에서 변화가 보이기 시작할 것이 확실하다.
커뮤니케이션 라인 소통
많은 전문가들이 우리 각자가 잘못된 습관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하고 그런 태도를 고치도록 조언한다. 그러나 이런 조언은 말로는 쉬운 것 같아도 실천에 옮기기는 무척 어렵다. 감수성을 강조하게 되면 여성의 기준으로 기울게 되고 그 결과 많은 남성들까지도 여성화될 위험이 높다. 반면 독단을 강조하면 남자의 기준을 앞세우게 되어 많은 여성이 남성화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감수성을 기르거나 독단성을 확보하면서 현재보다 나아질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이라고 해서 하는 일마다 모두 틀린다고 말할 수만은 없지 않은가. 실제로는 별로 잘 못을 저지르지 않았는데도 결국에는 언쟁으로 끝나게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문제는 바로 파트너가 전혀 다른 시스템 [이를 성방언(genderlect)이라 부르자]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다.
문제는 성방언이 누군가에 의해서 가르쳐질 수 있는 것인가, 또 사람들이 대화의 스타일을 바꿀 수 있는 것인가가 되겠다. 분명히 답하지만 어느 정도까지는 대화의 스타일을 바꾸고 성방언을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자기 자신의 스타일을 바꾸려고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것이 확실하다. 보통 이런 사람들도 상대방이 스타일을 바꾸도록 희망하게 된다. 자기 자신의 스타일을 바꾼다는 것을 본래가 호소력이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당신이 행동하는 방법을 바꾸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지금까지 고수했던 자신을 부정하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보다 현실적인 접근방법은 상대방의 메시지를 정확히 해석하고 그 해석을 상대방이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방법으로 설명하는 것이 되겠다.
성방언을 이해하고 나면 당신이 원하는 때 스타일을 바꿀 수 있게 된다. 스타일까지는 바꿀 수 없게 된다 하더라도 적어도 관계개선에는 도움이 될 수 있다. 상대방이 자기와 다른 대화 스타일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기만 해도 자기와 상대방의 차이점을 수긍하는 쪽으로 기울게 될 것이다. 또 과거와 같이 서로 비난만 하는 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현재 많은 사람이 저지르고 있는 가장 큰 실수가 말을 하고 듣거나, 대인관계를 유지하는 데 한가지 정도(正道)밖에 없다고 믿는 점이다. 물론 당신이 자신의 방법이 최선이라고 믿고 있는데 그 방법이 잘못되었다느니, 그 의도가 의심스럽다느니 하는 소리를 듣는 것이 즐거운 일은 아닐 것이다.
이런 스타일의 차이를 인식하지 못하면 상대방의 개성에 대해서 비논리적이라거나 자신감이 결여되어 있다거나 자기중심적이라는 결론을 쉽게 내리게 된다. 또 상대방의 의중을 환하게 읽고라도 있는 것처럼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지 않다던가, 깔보고 있다던가 식으로 쉽게 비난하게 된다. 이런 오해도 스타일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면 금방 해결될 성질의 것이다. 그렇지 않고, '당신은 나에게 관심이 없어', 당신은 내가 당신을 위하는 것만큼 나를 위하지 않아', '당신은 나의 자유를 뺏어 가려고 안달이야'라는 식으로 느낀다면 그 사실만으로도 불행이랄 수 있다. 그 대신 '당신은 듣는 것 같지 않게 보이지만 다 듣고 있지요', '당신이 애정을 표시하는 방법은 나와 다르지요'라는 인식을 가지고 대화에 임하면 그 대화는 언제나 성공을 거두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면 당신이 상대방을 비난하기가 힘들게 되기 때문이다.
당신이 대화 스타일에서 남녀가 다르다는 점을 이해한다고 해서 모든 갈등을 전부 예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상태에서는 갈등이 빚어져도 걷잡을 수 없는 지경으로까지는 악화되지 않는다. 진실하게 대화에 임했다가 상대방으로부터 비난을 받게 되거나 사랑하는 사람이 비이성적이거나 완고하게 보일 때 남녀가 말하는 다른 언어는 각자 삶의 뿌리 자체를 뽑아 버릴 수도 있다. 상대방의 대화 스타일을 이해한다는 것 자체가 남녀간의 의사 불통을 해소하는 첫걸음인 것이다
[대화통로 뚫기]
